(임현우 정치부 기자) 4·13 총선을 앞두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여론조사업체 중 상당수가 선거가 끝난 뒤 무더기로 사라진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 특수를 노리고 ‘떴다방’ 식으로 치고 빠진 자격미달 업체가 그만큼 많았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여심위)에서 받은 ‘20대 국회의원선거 여론조사 실시 업체 현황’에 따르면, 4·13 총선 이후 186개에 달했던 여론조사업체에 대해 여심위가 지난 6~7월 전수조사를 한 결과 연락 두절 또는 폐쇄된 업체가 51개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또 지난 총선을 반 년 앞둔 시점인 지난해 9월 이후 여심위에 등록한 신생 업체 중 4분의 1 가량이 폐업했거나 연락이 닿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거 때 여론조사가 막대한 파급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당의 경선 과정에 중요 기준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 수많은 언론의 ‘판세 분석’ 기사에 인용된다. 또 유권자들이 특정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을 파악하는 잣대로 활용하고 있어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후보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선거 여론조사업체 등록규정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을 騁?왔다. 현행 규정상으로는 전화기 한 대만 갖추고 사업자등록만 마치면 선거 여론조사를 할 수 있다. 이 의원은 “규정을 악용해 선거 기간 반짝 등록했다 사라지는 여론조사업체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여심위 집계에 잡히지 않는 업체까지 감안하면 여론조사업체의 등록과 폐업이 얼마나 활발한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4·13 총선 때 영업한 여론조사업체 중 일부는 사업자 등록만 돼 있을 뿐 제대로 된 사무실이나 직원이 없는 ‘페이퍼컴퍼니’로 드러난 바 있다. 여론조사를 의뢰받아 저가로 ‘하청’을 주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또 일부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공표하는 자동응답(ARS) 방식의 정치 여론조사는 신뢰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업계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응답자가 자신의 신상을 거짓으로 답해도 걸러낼 방법이 없고, 응답률 자체가 너무 낮아 여론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다. 주요 여론조사업체들의 모임인 한국조사협회는 원칙적으로 ARS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퇴출한다는 내부 규약을 두고 있다.
여론조사의 공신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몇몇 ‘전략통’ 의원들은 아예 “여론조사 결과는 이제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닐 정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여론조사기관 등록제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국회에 낸 상태이며, 여야 의원들이 만든 비슷한 취지의 법안들도 다수 발의돼 있다.
이 의원은 “선거마다 단 몇 표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잘못된 여론조사로 인한 피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며 “국민을 호도하는 여론조사를 방지하고 보다 양질의 공신력 있는 선거여론조사를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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