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4승 등 프로통산 95승
스포츠 마케팅 사업 개척해 성공
미국 골프협회 '위대한 골프대사' 애도
[ 최진석 기자 ] ‘더 킹(King)’ ‘오거스타의 사나이’ ‘골프 전설’.
미국 골프선수 아널드 파머를 따라다닌 수식어다. 그가 8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골프채널 등은 26일(한국시간) “파머가 편안하게 잠들었다”며 그의 타계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8월 심장 수술을 받은 파머는 최근 건강이 악화돼 지난 24일부터 미국 피츠버그대 메디컬센터에 입원해 검사를 받아왔다.
미국골프협회(USGA)는 이날 “가장 위대한 골프 대사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협회가 그를 ‘골프 대사’로 칭한 건 골프 대중화에 기여한 그의 업적 때문이다. 그는 잭 니클라우스(76·미국), 게리 플레이어(81·남아프리카공화국)와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다.
파머는 1954년 US아마추어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곧바로 프로로 전향했다. 이듬해 캐나디안오픈에서 PGA투어 첫 승을 신고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프로 통산 95승을 거뒀다. PGA투어에서는 62승을 수확했다. 샘 스니드와 타이거 우즈, 니클라우스, 벤 호건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우승을 차지했다.
파머는 1958년부터 2년 간격으로 네 차례 마스터스를 제패했다. 마스터스에 유독 강한 그에게 ‘오거스타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960년과 1962년 PG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하지 못해 그랜드슬램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메이저대회 통산 7승을 거둔 파머는 1974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파머는 빼어난 기량과 신사적인 매너로 골프 전성기를 주도했다. 준수한 외모와 훤칠한 키, 시원한 장타와 어떤 상황에서도 버디를 노리는 공격적인 그의 경기방식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인기는 많은 수입으로 이어졌다. 그는 생애 수입 100만달러(약 11억원)를 돌파한 첫 번째 프로골프 선수로 기록돼 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도 파머가 개척자다. 그가 변호사 마크 매코맥과 손잡고 시작한 스포츠 마케팅 사업은 현재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골프대회 운영, 골프 의류와 유통 사업 등도 성공시켰다. 파머는 팔십을 넘기고도 해마다 2000만달러(약 222억원)가 넘는 돈을 벌었다.
PGA투어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 등을 주최하면서 후배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세계 300여개 골프 코스를 설계했고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아널드파머메디컬센터’를 설립했다.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는 “파머는 영원한 골프의 전설로 남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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