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적용 대상이 400만명에 이르는 데다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다. 당위성은 공감하면서도 모호한 법 조항 탓에 우려가 적지 않다. 부패 고리를 끊고 청렴사회로 나아가는 전기가 될지, 또 다른 명분법의 하나로 결국 사문화되고 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김영란법을 둘러싼 혼선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쏟아지는 온갖 문의만 봐도 알 수 있다. 권익위는 207쪽짜리 사례집을 내놓고, 자주 하는 질문(FAQ) 32건의 답변을 홈페이지에 올려놨다. 적용 대상 기관들마다 임직원에 대한 김영란법 교육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권익위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의 건수는 지난 8월 이후 1439건에 이른다. 전화 문의도 폭주다. 공직자,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의 행위 하나하나마다 법 저촉 여부를 묻는 내용이 대다수다.
물론 이런 혼란은 김영란법이 기존 법체계와 잘 안 맞는 데서 기인한다. 국내 법률체계는 열거된 금지사항을 국가가 소명하는 공법적 구조다. 한데 김영란법은 열거된 금지행위가 14개뿐이고 부정한 금품 등의 수수에서도 열거되지 않은 수많은 유사 행위가 문제될 수 있다. 처벌되는 행동에 대한 질문이 쇄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법의 취지는 명백하다. 개인의 고질적인 부패, 비리, 부정 청탁을 근절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행동의 적정성을 열거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것은 유감이다. 처벌만 피하면 된다는 ‘꼼수 사회 증후군’이랄 수도 있다.
김영란법은 한마디로 돈 받지 말고, 접대 받지 말라는 주문이다. 3만원 이상 식사를 처벌하는 것이 2만9900원까지는 얼마든지 얻어먹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법 시행을 앞두고 타인과의 모든 관계를 퀴즈 백과사전처럼 규정집으로 만들자는 우스꽝스러운 시도로 변질되고 있다. 이런 식이면 문답집이 수많은 인간의 행동과 관계를 모두 규정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법의식이 사회적 코미디를 만들고 있다. 법은 처벌규정을 알아야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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