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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 이모·골드 고모' 진화하는 조카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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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만혼, 1인가구 증가
영·유아용품 시장 '큰 손' 등극
"자녀에 쏟는 애정 변형·전이된 것"




[ 김봉구 기자 ] 30대 초반 회사원 이은하씨(가명)의 소셜커머스 앱(응용프로그램) 추천 목록에는 아동복, 아동 뮤지컬·체험형 테마파크 티켓 등이 뜬다. 이씨는 미혼이지만 조카를 위해 구매한 아동 용품들 덕분에 추천 목록이 온통 유아용 상품으로 채워졌다.

그는 300만원 내외 월급 가운데 30만~50만원 가량을 조카에게 쓴다. 조카의 생일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가 낀 달은 100만원씩 나간다. 이씨는 “조카에게 쓰는 돈을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했다. 조카도 이모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여긴다. 부모·자식 못지않은 애착관계가 형성됐다.

20대 후반의 미혼 직장인 김소연씨(가명)는 최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신생아 사진으로 교체했다. 소식이 뜸했던 지인들은 그에게 언제 결혼하고 출산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김씨는 “조카가 너무 귀여워서 그랬다”고 일일이 답해야 했다.

자녀를 낳지 않는 대신 조카에 흠뻑 애정을 쏟는 ‘조카바보’들이 늘고 있다. 미혼 또는 비혼(非婚), 만혼(晩婚)이 늘爭?영향이 크다. 1인가구 증가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자녀 양육의 부담감과 책임감은 덜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을 ‘대리만족’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풀이된다.

◆ SNS까지 달라지는 '조카바보 커뮤니티'

조카바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사용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도 다르다. 이씨는 “또래들은 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이용하지만 조카바보들은 카카오스토리를 많이 쓴다. 카카오스토리 주이용층이 30대 엄마들이라 육아 정보가 풍부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자녀를 둔 부모만큼은 아니지만 SNS 게시물의 절반 정도를 조카 사진이나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는 게 이씨의 설명. 일종의 ‘조카바보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셈이다.

30대 중반인 강수연씨(가명)는 “엄마들이 커뮤니티에서 육아 정보를 얻는 것처럼 조카바보들도 나름의 노하우를 익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조카 선물은 맹목적으로 비싼 것만 샀다. 해외에서 수십만원짜리 명품 브랜드를 사온 적도 있다”면서 “커뮤니티에서 조언을 얻어 SPA 브랜드에서 옷을 사면서 부담이 줄었다”고 전했다.


◆ '골드 이모·골드 고모' 진화하는 조카바보

대부분 싱글인 이들은 사회생활 하면서 얻는 각종 정보를 조카와 보내는 데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체험활동을 하거나 단둘이 여행을 가기도 한다. 강씨는 “혼자 살아서 취미생활을 빼면 특별히 돈 나갈 데가 없다.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카에게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강씨처럼 조카바보와 ‘골드 미스’가 결합하면 ‘골드 이모’나 ‘골드 고모’가 된다. 이미 영·유아 용품 시장의 ‘큰 손’으로 등극했다. 경제력을 갖춘 조부모를 겨냥해 골프 용품 등과 백화점 같은 층에 배치되던 키즈 용품이 최근 20~30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대형몰에 자리 잡는 이유다.

실제로 추석을 앞둔 지난 12일 찾은 롯데백화점 본점의 한 키즈 용품 판매사원은 “사실 부모가 자녀에게 사줄 때는 이월상품 등 저렴한 상품이 많다. 고가 상품 매출은 조카나 손주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손님들에게서 나오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내아이 아니라도 좋다' vs '아니어서 좋다'

이처럼 조카바보가 늘어나는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기존 가족형태의 정서 간 격차가 생기면서 이를 메우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김한곤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하지 않거나 자녀를 갖지 않겠다는 비율이 늘고 있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1인가구 비중이 가장 높은 것만 봐도 뚜렷한 흐름”이라고 짚은 뒤 “실제로 자녀를 갖지는 않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특성상 아이에게 애정을 쏟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게 조카바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내 아이가 아니라도 좋다’는 마음 한편으로 ‘내 아이가 아니어서 좋다’는 미묘한 감정도 느낀다. 애정과 부담감이 교차하는 심리 탓에 대리만족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40대 초반 맞벌?부부인 양선희씨(가명)는 “결혼을 늦게 했다. 조카를 보면 예쁘지만 솔직히 내 아이를 낳아 기를 엄두는 안 난다”고 털어놨다.

김 교수는 “자녀를 갖기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변형된 형태가 조카바보라 할 수 있다. 당분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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