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들 "이 정도로 티날 줄 몰랐다" 탄식
접대 수요보다 단체팀 많은 대중제는 꽉 차
[ 이관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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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가평군에 있는 한 명문 골프장의 J대표는 6일 통화에서 탄식부터 쏟아냈다.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때문이다. 법 시행 여파를 묻는 말에 상황표를 한 번 확인하겠다던 J대표는 생각보다 예약률이 크게 떨어진 것을 확인하곤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법 시행 여파가) 진짜 이 정도로 티가 날 줄은 몰랐다”며 “초반에 이러면 추석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김영란법 시행이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내 골프장들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이미 10월 초 라운드 가예약률이 최고 50%가량 떨어지는 등 이른바 ‘예약 절벽’ 사태가 가시화되고 있어서다. ‘시범 케이스에 걸릴 수 있으니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회원 고객들의 예약 취소가 이번주부터 쏟아지고 있다.
무더기 예약 취소
골프장은 대개 라운드 예정일 3~4주 전부터 예약을 확정한다. ‘D-데이’인 이달 28일 이후 라운드를 할지 말지를 이달 첫째주와 둘째주에 결정해야 한다. 10월은 골프장 연간 매출의 15~20%까지 차지하는 극성수기. 평소 부킹 청탁이 극성을 부릴 때지만 이달 들어서는 상황이 정반대가 됐다.
J대표는 “10월 초 황금연휴인 1~3일 예약이 하루 50~60팀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며 “평소 같았으면 매일 120팀 정도가 몰렸을 텐데 절반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원 춘천시의 한 회원제 골프장도 비슷한 처지다. 9월 라운드는 25일 일요일 2부 티오프까지 꽉 차 있다. 하지만 28일 이후 주말 가예약이 70%밖에 차지 않았다. 그나마도 상당 부분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골프장 예약팀장은 “어제도 한 회원 고객이 10월 중 6개의 주말 예약을 모두 없던 걸로 해달라고 전화했다”며 “다음주부터 이런 전화가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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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골프장은 이런 예약 급감 사태를 지켜보면서도 뾰족한 대책이 없어 답답해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의 회원제 골프장 L대표는 “잠시 스쳐가는 소나기일지 아니면 앞으로 이런 상황이 굳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더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단 부킹 브로커들을 통해 회원 고객이 취소한 타임을 비회원에게 팔아 주말 그린이 텅텅 비는 사태는 막아볼 작정이다. L대표는 “떨이(그린피 할인판매)를 하면 매출 부족분은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래도 10월 한 달엔 매출이 최소 20~30%는 줄어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회원제 골프장과 달리 퍼블릭(대중제) 골프장은 법 시행 파고에서 비켜나 있는 분위기다. 28일 이전이나 이후 예약률에 특별한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경기 안산시의 한 퍼블릭 골프장 총지배인은 “10월도 이미 주중 주말 예약이 모두 다 차 있다”며 “이쪽은 접대 수요보다 동호인이나 단체팀이 대다수여서 법 시행과는 거의 상관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회원제 골프장은 이미 퍼블릭으로 전환해 김영란법 후폭풍을 비켜가는 모습이다. 올 들어서만 20개 골프장이 퍼블릭으로 전환했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김영란법 시행이 회원제 골프장의 대중제 전환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할 것”이라며 “경영이 어려워지면 회원제와 대중제, 대중제와 대중제 간 그린피 할인 경쟁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