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 김현석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인근에선 여전히 시민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를 위한 인권 지킴이)의 농성이 계속됐다. 이들은 강남역 8번 출구 옆에 아예 숙식을 위한 장비를 갖춰놓고 시위 중이다. “삼성이 근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커다란 마이크 소리에 출근하던 시민 일부는 잠시 지켜보기도 했지만 이내 돌아섰다. 시위가 시작된 게 작년 10월이니 벌써 열 달이 넘게 흘렀다.
이날 대법원에선 관련 판결이 하나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가 전 삼성전자 직원 김모씨(47)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모씨(2005년 사망)의 부인 정모씨(39) 등 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 것.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직원과 유가족 3명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패소가 확정됐다. 김씨 등 5명은 2007~2008년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을 신청했으나 공단이 백혈병 발병과 삼성반도체 근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1, 2심은 원고 중 渦?등 3명에 대해선 “유해 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이는 삼성 측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정한 건 아니다. 법원은 2014년 나머지 원고 2명에게 “근무 중 각종 유해 화학물질과 미약한 전리 방사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발병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백혈병 발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공단이 상고를 포기해 2심 승소가 확정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권오현 부회장이 사과하고, 기금 1000억원을 마련해 협력사 직원까지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주고 있다. 벌써 100여명 넘게 보상했다. 이날 패소가 확정된 김모씨 등 3명도 이미 보상받았다. 또 반올림과 합의한 대로 외부 전문가로 이뤄진 옴부즈만위원회가 지난 6월부터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 진단을 시작했다.
하지만 반올림은 “사과와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 측이 보상할 게 아니라 1000억원으로 중립적 기구를 세우고 그곳을 통해 보상하라는 식이다. 물론 중립적 기구엔 반올림 측 인사가 포함된다.
반올림은 이번 직업병 사태 해결에 큰 기여를 해왔다. 삼성 측 사과와 보상을 이끌어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보상받았다. 법적 책임도 이제 결론이 났다. 일부 피해자에 대해선 삼성 측 책임이 인정됐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반올림은 이제 농성을 풀고 명예롭게 물러나는 걸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김현석 산업부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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