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못하면 가족도 버리나요?
인간 아닌 동물 보조기 만드는 남자
아픈 동물 뒤에는 아픈 주인이 있다
▼ [래빗GO] 다리가 불편한 '쫑이' 만나러 갑니다 !.!
강아지 한 마리가 왼쪽 뒷다리를 절룩인다. 10살 '쫑이'. 슬개골 탈구를 앓고 있다. 무릎 관절 위 슬개골이 어긋나는 관절병이다. 불편한 다리를 절어가며 주인 정진희(31) 씨 뒤만 따른다. 지난 8일 진희 씨는 아픈 쫑이를 위해 국내 최초 동물 전문 의지보조기 제작 업체를 찾았다.
“쫑이는 나이가 많아 수술이나 완치가 힘들어요. 그간 물리치료에 약도 먹였는데 진척이 없어 여기 왔어요.”
진희 씨가 품에 안고 있던 쫑이를 건넨다. 3명의 직원이 쫑이를 사방에 붙들어 바른 자세로 세운다. 낯선 사람에 붙들린 쫑이는 연신 불안해한다. 진희 씨는 바들바들 떠는 쫑이와 눈을 맞추고 두 손으로 잡아준다. 직원들에게 왼쪽 뒷다리를 내준 쫑이는 진희 씨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한 남자가 각종 장비들이 즐비한 방에서 검은색 장치를 들고 나온다. 인간 의족이나 의수를 만드는 정식 자격을 보유한 김정현 펫츠O&P 대표(33). 김 대표는 보건복지부의 인간 의지보조 기사 자격을 보유한 전문가다. 2013년 국내 처음으로 동물 전문 의지보조기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동물용 관절 보조기, 의족 뿐만 아니라 휠체어, 하네스(견구) 등까지 만든다.
김 대표 손에 들린 장치는 ‘동물용 무릎 보조기’. 슬개골 탈구, 인대 손상, 골절 등을 앓는 동물을 위한 특수 장비다. 일주일 전 쫑이 뒷다리를 석고로 떠 만든 맞춤형 보조기다. 쫑이 왼쪽 뒷다리에 보조기를 채운 뒤 쫑이를 걷게 한다. 보조기가 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사람 손을 벗어난 쫑이가 진희 씨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진희 씨는 웃으며 안는다. 보조기가 헐거운지 다리에서 살짝 빠진다. 김 대표는 정비실에서 다시 보조기 끈을 가위로 자른 뒤, 재봉틀에서 박는다. 딱딱한 보호대는 그라인더로 갈아낸다. 쫑이 다리에 딱 맞도록 수정에 수정이 이어진다.
동물의 장애와 마주하다
재봉틀 앞에서 박음질에 여념없는 김 대표가 말한다.
“4년째 (동물 보조기를) 만들고 있어요. 원래 사람 팔다리를 대신할 의지보조기를 만들었어요. 어느 날 키우던 고양이가 문틈에 끼여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엉덩이를 질질 끌고 걸어 다니다가 결국 일주일도 안돼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당시 동물 의지보조기를 만들어주는 곳은 국내에 아무 곳도 없었어요. 제 직업이 의지보조 기사이니, 제가 동물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동물 보조기 필요성을 뼈아프게 깨달은 의지보조 기사는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인터넷을 뒤져봐도 국내 제작 업체가 없었어요. 장애를 앓는 동물들 대부분이 안락사를 당하거나, 주인에게 버림받는 사실도 알게 됐죠. 그러다 해외는 사람 의지보조 기사가 동물 의지보조기도 제작하는 걸 알게됐죠. 그 길로 무작정 미국 의지보조기 업체에 도움을 구하는 메일을 보냈어요.”
1년 간 끊임없이 미국 업체를 설득했다. 국내 장애 반려동물의 절박한 상황도 수없이 알렸다. 3년 간 다닌 사람 의지보조기 업체도 관뒀다. 그 길로 미국으로 건너가 동물 보조기 제작 기술을 배워왔다.
장애를 가진 생명과 끈질기게 연대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조금이나마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은 제 친동생도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자원봉사자분들을 도우며 장애를 겪는 분들을 많이 접했어요. 정말 남들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분들요. 자연스레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했고 재의학과(재활공학과)에 진학했죠.”
지난 7년 간 장애로 고통받는 사람과 동물을 마주한 소회는 이랬다.
“의지보조기는 동물에게도 정말 필요해요. 사람은 아프면 움직이지 않아요. 아픈데 당연히 조심하고 살죠. 근데 동물들은 그냥 움직여요. 아파도 티도 잘 안네요. 집단 생활에서 버림받을까 두려워하는 본성이에요. 주인이 발견했을 땐 증상이 악화된 상태가 많아요. 결국 (신체를) 절단까지 하죠."
반려 동물의 주요 장애 유형도 설명했다. 실내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에게 후천적 장애가 많다고 했다.
“장애는 크게 두 가지. 선천적 그리고 후천적 질환이죠. 여기 오는 반려동물 95%는 후천적이에요. 그 중 절반 이상은 실내 질환을 앓습니다. 예전 개는 흙이나 풀 위에서 놀았어요. 요즘엔 대부분 미끄러운 마룻바닥 위에서 생활해요. 개들이 소파나 침대로 뛰어오를 때, 반갑다고 두발로 설 때 발이 미끌려요. 관절이 젖혀 뼈와 인대가 끊임없이 손상되고,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장애견이 됩니다. 환자견 30%는 척추 질환을 앓아요. 바닥이 미끄러우니 높은데서 뛰어내리다 착지를 잘못해 다치죠. 주인이 안고 있다 떨어뜨려서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예요. 척추가 손상되면 하반신 마비 ?옵니다. 휠체어 없이는 생활이 힘들어져요.”
가족처럼 생각한다면
동물 병원과 의지보조기 업체 차이는 뭘까.
“동물이 아프면 일단 병원에 가야죠. 진단은 수의사가 합니다. 대신 진단을 받아 오면 저희는 보조기를 만들죠. 사람이랑 똑같아요. 병원이 휠체어를 팔 수는 있지만 만들지는 않잖아요. 보조기 제작은 의학 외에 공학적 측면이 많거든요. 다행히 보조기를 바라보는 수의사 인식도 많이 바뀌었어요. 3년 전만 해도 의아해하는 수의사가 많았죠. 관절 장애를 가진 개를 수술하는게 항상 최선은 아니거든요. 수술 후 재활 과정에서도 보조기는 큰 역할을 합니다. 주인들이 보조기 필요성을 알게 한 게 가장 보람있죠. 덕분에 동물재활학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장애 동물과 동물 보조기를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은 여전하다.
“장애 반려동물을 바라 릿?대중의 시선은 늘 아쉬워요. 의수나 장갑을 낀 장애인을 보면 불편해합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을 의식해 소매로 의수를 가리죠. 몇몇은 장애견을 데려온 주인에게 퉁명스럽게 물어요. 아픈데 왜 데리고 나왔냐고, 왜 키우냐고. 정말 불쾌한 일이에요. 심한 경우에는 개XX한테 무슨 수십 수백만원짜리 의족, 휠체어를 해주냐고 욕도 하죠. 마음 아플 주인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손님 중에 그런 소리 듣는게 무서워 외출을 포기하신 분도 있어요. 너무 안타깝죠.”
이어 기자 팔 위, 모기 물린 자국을 가리킨다.
“제가 인터뷰 중 계속 힐끔힐끔 기자님 팔을 쳐다봐요. 기자님도 분명 신경 쓰일 거예요. 모기 물린 상처도 거슬리는데 큰 상처, 장애는 오죽하겠어요.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동물만 아픈게 아니라 주인도 마음이 아픕니다. 아픈 동물 뒤에도 항상 주인분이 계세요. 저희는 동물만 돕는 게 아니에요. 아픈 동물을 보살피는 주인의 고통도 함께 덜어드리는 게 목표입니다.”
한 시간 가량 인터뷰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밝은 표정의 쫑이가 진희 씨 보라는 듯 사방을 뛰어다닌다. 수선을 다시한 보조기는 이제 흘러내리지 않는다. 쫑이가 기자를 향해 크게 한번 짖는다. 활력이 느껴진다.
진희 씨는 왜 쫑이를 이 곳에 데려왔을까.
“예전에 쫑이랑 살던 강아지는 하반신 마비로 죽었어요. 그래서 쫑이만큼은 잘해주고 싶습니다. 비용은 많이 들지만 이게 옷이나 액세서리처럼 몸 치장하는데 쓰는 돈이 아니잖아요.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쓰는 돈이에요. 정말 가족이라 생각하면 당연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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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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