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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고 계십니까?…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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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디자인
디자인 / 리카르도 팔치넬리 지음 / 윤병언 옮김 / 홍디자인 / 416쪽│1만5000원

영수증·세금 고지서·스티커…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
무의식 영역에도 영향 미쳐

디자인의 기원은 인쇄된 책
금속활자 만든 구텐베르크가
사상 최초의 디자이너인 셈



[ 김희경 기자 ] “어둠 속에서 촉감만으로도 인식할 수 있고 깨져도 원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병.”

1915년 코카콜라가 디자인 공모전을 열며 내건 요구 조건이다. 디자인 공모전에서 이보다 더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는 힘들 것이다. 젊은 디자이너 얼 딘은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몸매와 카카오 열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조건에 맞는 병을 만들었다. 생산자는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디자이너는 이를 통해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탄생한 코카콜라 병을 보며 사람들은 상품 자체를 떠올린다. 더 나아가 하나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앱솔루트 보드카도 마찬가지다. 병 자체가 상품과 동일시된다. 이뿐만 아니다. 넓고 납작한 캔을 보면 자연스럽게 참치를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세제 용기에 담긴 와인은 상상할 수도 없다. 시각 디자括?힘이다.

《시각 디자인》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시각 디자인을 소개한다. 산업, 소비, 맥락, 코드 등 21가지 주제로 나눠 풍부한 사례와 함께 다채로운 디자인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 리카르도 팔치넬리는 이탈리아 에이나우디 출판사의 아트 디렉터다. 로마의 고등산업예술학교 디자인학과에서 인지심리학도 가르친다. 팔치넬리는 “디자인이 나온 시대와 사용하는 환경, 디자이너의 생각을 읽으면 디자인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014년 출간된 이 책은 대표적 디자인 입문서이자 교양서로 꼽히며 스테디셀러가 됐다.

시각디자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냉동식품 포장지, 지하철 시간표, 약국 영수증, 전기요금 고지서, 자몽 위에 붙은 상표 스티커, 타일의 패턴, 셔츠 재단을 위한 밑그림 등 다양하다. 늘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기호나 아이콘, 글씨체도 하나의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디자인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정보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이들을 유혹할 목적으로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는 디자이너의 정의도 새롭게 내린다. 저자에 따르면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만이 디자이너가 아니다. 때로는 수학자, 공학자, 철학자가 디자이너가 되기도 한다. 현대의 인포그래픽 시스템을 탄생시킨 아이소타입(상징적 도형이나 기호를 조합해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경제학자인 오토 노이라트가 만들었고, 최첨단의 세계지도는 수학자들이 이룬 통계학의 성과라고 그는 설명한다.

이 책은 디자인의 역사를 500여년으로 확장한다. 디자인 책 대부분이 모더니즘 이후 100여년 정도만을 분석하는 것과 다르다. 저자는 디자인의 기원을 1400년대로 본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때다. 저자는 “운동화나 저장식품 용기에 앞서 산업의 힘으로 생산된 최초의 디자인 상품은 인쇄된 책이었다”며 “디자인 이야기의 문을 연 사람은 구텐베르크”라고 주장한다.

디자인은 무의식의 영역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을 읽는 방향을 생각해 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이것 역시 하나의 디자인이다. 이 디자인으로 인해 우리는 모든 것을 특정 방향으로 생각한다. 어떤 상품의 효과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광고는 철저히 이 습관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화면을 반으로 나눠 왼쪽에 지저분한 셔츠가 나오고 오른쪽에 깨끗한 셔츠를 소개하는 광고들이 대표적이다. 영화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누군가가 떠날 때면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누군가가 돌아올 때면 왼쪽을 향해 움직인다.

슈퍼마켓이나 마트 등의 디스플레이도 치밀하게 구성된 디자인이다. 이 공간은 하나의 정확한 줄거리를 토대로 설계된다. 채소는 항상 입구에 놓이고 초콜릿은 계산대 옆에 놓인다. 먼저 의무를 다한 다음에 쾌락을 찾는 것을 간파한 정교한 각본에 따른 것이다. 초콜릿이 입구에 있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떼를 쓰는 아이 때문에 부모들은 더 많은 상품을 여유롭게 사기 어려울 것이다.

디자인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만의 관심 분야라고 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의 일상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사회·문화적인 맥락을 잘 알아야만 한다. 저자는 “디자인을 이해하려면 형태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야 한다”며 “디자인은 자본가와, 사용자, 설계자의 꿈과 뜻을 드러내는 사회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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