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 참석 등 잇단 오판
한반도 비핵화를 북핵으로 오역해온 외교적 미숙
근육질 자랑하고픈 성장기 콤플렉스가 중국몽
국내 친중파도 보편적 가치 재인식하는 계기 삼아야"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박근혜 정부의 친중 노선은 당혹스런 일이었다. 이어지는 오판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회피한 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내달려 간 것, 본문 합의도 없다고 의심받는 상태에서 서둘러 한·중 FTA를 체결한 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지지를 선언한 점, 중국의 소위 전승절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들 말이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을 주중대사로 임명한 것은 작은 사건이었다. 한·미 간 군사 비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베이징에 중국의 친구로 보내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미국 조야가 깜짝 놀랐다고 한다.
우방과의 거리는 친중의 거리만큼 벌어졌다. 2015년 11월2일, 3년6개월 만의 정상회담이 열릴 때까지 일본은 아예 적대국이라고 할 정도였다. 시진핑을 여섯 차례나 만날 동안 일본은 한 차례에 그쳤다. 한·일 관계는 누군가 악의적으 ?쳐 놓은 위안부의 덫에 걸려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미·일·호주로 대체하자는 주장이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제기됐다. 시진핑은 한·중 정상회담에서 대놓고, 그리고 실로 황당한 임진왜란 당시의 한·중 동맹을 언급했다. 윤병세의 외교부는 시진핑의 이 발언을 사전에 저지했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그는 “대미, 대중 외교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익살을 떨었다. 지금 중국의 왕이는 대놓고 모욕적 언사를 퍼붓고 있지만 즐거운 윤병세는 아무런 응답도 없다.
어제 박 대통령은 “중국의 태도가 본말전도”라고 비판했다. ‘북핵을 문제 삼아야지 왜 방어무기인 사드를 문제 삼느냐’는 반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한 중국은 지금껏 북한 핵을 비판한 적이 없다. 누차에 걸친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중국은 언제나 ‘한반도 비핵화’를 말해 왔을 뿐 북핵 위험성을 언급한 적이 없다. 대통령의 인식과 중국의 속셈은 달랐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징한 언어를 ‘북핵 폐기’로 고의로 오역해 왔다. 장차 대한민국이 핵폭탄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이는 한·중 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을 위반한 것이 되고 만다. 핵우산도 그럴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뒷배를 봐주는 것은 중국의 세계관이 만들어 내는 사활적 이해 때문이다. 피가 끓는 중국은 근육을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아직은 청소년 단계의 정신세계에 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무역질서에 기반한 우방과의 평화가 아니라 조공관계의 중국 천하관을 재현하고자 하는 낮은 의식에 머물러 있다. 중국이 두만강에 공격용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한 번도 한국에 설명한 적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남중국해 문제도 다르지 않다.
박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생각에는 혼란스런 부분이 많다. 대통령의 작년 8·15 기념사에서는 식민지배를 종식시켜준 미국에 대한 형식적 감사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TPP도 대통령의 인식에서 사라졌다. 참모들은 수준도 낮은 한·중 FTA에 온통 정신이 팔려 중국의 대변자를 보는 듯했고 전승절 참석은 최악이었다. 한경은 2015년 8월11일자 ‘미국 일본도 안 가는 중국 전승절 행사에 왜 간다는 건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전승절 참석을 적극 만류한 적도 있다. 물론 일부 친중·좌익언론은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부추겼다. 결국 그날 행사에는 푸틴과 옛 소련 지역의 독재자, 그리고 아프리카의 국제형사범죄 수배자급 인사들만 참석했다. 대통령을 톈안먼으로 인도해 간 바보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 지난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대통령의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아니 사드 배치 등 때늦은 안보 현실의 재구축을 적극 지지한다. 문제는 우리 속의 얼치기 친중사대주의적 흐름이다. 서울대의 자칭 1급 교수 중에도 ‘중국 G1론’을 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다. 어제 중국을 방문한 사드 반대 국회의원들은 아마도 베이징의 귀여움을 많이 받을 것이다. 친중은 조선 주자학과는 두 걸음, 좌익과는 한 걸음, 친북과는 반걸음 떨어져 있을 뿐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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