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법안 쏟아내는 국회
전경련 "규제 온도 영하 53.1도"
규제완화는 '강화 법안'의 30%에 그쳐
"의원입법도 규제영향평가 도입해야"
[ 장창민 기자 ]
“20대 국회에서 쏟아낸 각종 규제 법안 때문에 기업들이 숨을 못 쉴 지경입니다.”
A기업 회장이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건넨 말이다. 그는 “20대 국회가 규제 강화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는데 재탕, 삼탕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렇게 기업을 옥죄면 어떻게 경기 불황을 극복하고 일자리 창출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털어놨다.
◆규제법안 76.5%가 규제 강화
A기업 회장의 이 같은 하소연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대 국회 개원 후 두 달간 의원 발의 법안을 분석한 결과 규제 관련 법안 597개 중 규제 강화 법안이 457개에 달한다고 4일 발표했다. 새로 나온 규제 법안의 76.5%가 기존 규제를 더 세게 죄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규제 완화 법안은 140개(2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은 이 같은 상황을 ‘규제온도’로 따지면 영하 53.1도라고 했다. 규제온도는 전경련이 만든 개념으로 규제 완화 법안 비율에서 규제 강화 법안 비율을 뺀 수치다. 규제 강화 법안 비중이 더 높으면 ‘영하’로, 반대의 경우 ‘영상’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규제온도는 이전 국회인 17대(-25.9도), 18대(-4.6도), 19대(-43.9도)보다 더 낮다고 설명했다.
20대 국회의 규제온도를 상임위원회별로 보면 환경노동위원회가 -95.9도로 가장 낮았다. 보건복지위원회(-73.7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69.5도), 산업통상자원위원회(-64.7도), 정무위원회(-60.0도) 등의 순으로 뒤를 이었다.
전경련은 불합리한 규제 양산을 막기 위해 발의 법안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의원 입법에도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입법은 규제 신설·강화 내용이 담기면 규제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입법예고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의원 입법은 국회의원 10명만 찬성하면 바로 국회에 제출할 수 있다.
추광호 전경련 산업본부장은 “불합리한 규제나 황당 규제 등을 막기 위해 지난 18대, 19대 국회에서 의원 입법에 규제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제대로 논의도 못하고 폐기됐다”며 “20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시간까지 규제
전경련은 20대 국회가 쏟아낸 각종 법안 중 △상법 개정안 △지방대육성법 개정안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 △물류시설법 개정안 △어린이식생활법 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소비자집단소송법안 △법인세법 개정안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을 대표적 규제 강화 법안으로 지목했다.
전경련은 특히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결합해 투기자본이 적은 지분으로 회사 이사회를 사실상 장악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독점규제법 개정안은 기업 간 정상적인 내부거래까지 차단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전경련은 ‘황당 규제 법안’도 줄을 잇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명 ‘퇴근 후 카카오톡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정해진 근로시간 외에 전화,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업무 지시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최고임금법 제정안’도 황당 규제 법안으로 꼽힌다.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현행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이 법에 따른 최고 연봉은 4억5000만원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극장 입장권에 명시한 영화 시작 시간 이후 광고나 예고편을 상영하면 과태료를 물리는 법안(영화 및 비디오물진흥법 개정안)도 무리한 법안으로 지적된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