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감성적인 슬로건은 가슴을 뛰게 한다. 거창할수록 더욱 그렇다. 1965년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벌인 복지 캠페인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가 그랬다. 구체적인 정책으로 ‘빈곤과의 전쟁’을 시작하자 존슨의 인기도 치솟았다. 지지율이 70%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위대한 사회’는 실패로 끝났다.
복지 정책에 미련이 많은 민주당 쪽 사람들은 당시 존슨이 베트남전을 벌이는 바람에 ‘위대한 사회’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아쉬워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가 결국 1990년대 종말을 고한 것과 마찬가지로 퍼주기 복지 정책은 그 자체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만큼 미국 사회를 퇴보시켰다.
리처드 파이프스 전 하버드대 교수는 《소유와 자유》에서 대표적 정부 실패로 ‘위대한 사회’를 꼽았다.
의존성 키운 복지가 가난 불러
“‘위대한 사회’가 시작된 1965년부터 1993년까지 빈곤 인구 비중은 12.5%에서 15%로 늘어났다. 복지예산은 연 500억달러에서 3240억달러로 증가했는데도 말이다. 복지제도가 의존성을 키우고, 의존성이 가난 ?키웠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실패의 예가 미혼모 지원이다. 당초 아이를 키우는 과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결국 미혼모를 부추기는 효과만 불렀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 비율이 1960년엔 5.3%였으나 1990년엔 28%로 급증했다. 최근엔 이 숫자가 40%까지 올랐다.
‘위대한 사회’ 이후 그동안 80여개 복지프로그램에 22조달러가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만큼 절대빈곤 등 물질적인 부문은 상당히 개선됐다. 미국 사회의 진짜 걱정거리는 따로 있다. 추락한 근로 의욕이다. 실업수당을 포함한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고 살겠다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30~49세의 사회 중추들이 노동하지 않는 비율이 1968년엔 3%에 불과했으나 2008년엔 12%로 치솟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가난한 가족의 평균 근로시간이 호황기에도 주당 평균 16시간밖에 안 된다는 통계도 있다. 자기 책임을 지지 않는 국민이 됐다는 반성이 ‘위대한 사회’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이후 미국 경제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한다.
'경제 민주화'도 같은 길 예고
그런데 ‘위대한 사회’는 한국 사회를 떠도는 ‘경제민주화’ 망령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경제민주화는 지난 대통령 선거의 아젠다였고, 결국 수년 만에 복지 비중이 나라 예산의 30%를 넘는 결과를 낳았다. 국민들의 의존성은 그새 눈에 띄게 심해지고 있다. 아이들 교육과 급식은 물론 어린아이 보육까지 나라가 맡으라면 부모가 할 일이란 무엇인가. 그 와중에 정년은 60세로 연장되고, ‘안 잘리는 것’이 회사 다니는 목표가 됐다. 입신출세하고 일가를 이루겠 募?꿈은 어쭙잖은 과욕이 됐다.
복지 정책의 실패는 결국 소유권과 자유의 문제로 연결된다. 사회복지라는 명분 아래 부를 배분한다면 그것은 소유권과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같이 나누자는 ‘동반성장’을 얘기하면 계약의 권리는 설 자리가 없다. 파이프스 말대로 “오늘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폭정이 아니라 평등”이다.
소유권과 경제적 자유를 위협하는 경제민주화가 20대 여소야대 정국에서 기세등등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위대한 사회’의 한국판이 또 쏟아져 나올까 봐 걱정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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