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
[ 고윤상 기자 ]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노 코멘트’입니다.”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을 경험한 기업 관계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압수수색 관행에 대해 취재하는 취지나 배경을 설명하기도 전에 입을 닫았다. 로펌 소속 변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변호사는 “검찰에 찍히면 어떻게 될지 잘 알면서…”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국경제신문은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해 현 정부 들어 지난 3년간(2013~2015년) 압수수색이 연평균 6만8900여건으로 지난 이명박 정부 때(연평균 3만4000여건)의 두 배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본지 7월16일자 A1, 9면 참조
압수수색 건수가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보이스피싱과 증권사기 등 신종 범죄가 늘어난 영향이 크다는 검찰의 설명도 일리가 있다. 검·경 인력이 대대적으로 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만큼 열심히 뛰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압수수색 행태는 왜 변함이 없는지 곱씹어볼 부분이다.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와 직원 휴대폰, 수첩 등을 ‘싹쓸이’ 식으로 들고 가는 압수수색 관행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특정 혐의와 관련한 구체적인 증거만 복사해가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7월 “저장매체에 저장돼 있는 일체의 전자정보는 개인이나 기업의 영업비밀 등 사업 전체를 드러내는 일기장”이라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당사자나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판결을 했다.
이런 판결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탈탈 털어가는 식의 압수수색으로 기업 영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한다. 검찰이 범죄 혐의를 잡고 압수수색에 나서는지, 혐의를 잡기 위해 수색에 나서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검찰의 롯데그룹 압수수색이 대표적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 인력인 240여명을 투입해 1t 트럭 10대 분량의 압수물을 가져갔지만 아직까지 핵심 경영진을 둘러싼 범죄 혐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식 압수수색 관행을 지적하면 검찰도 억울하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압수수색으로 피해를 보는 쪽은 검찰이 아니라 기업이다.
고윤상 지식사회부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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