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정학대회 7월31일~8월6일 대전서 개최
"다양한 가족형태 수용하고 집안문제도 알려야"
[ 김봉구 기자 ] “요즘 여대생들은 결혼은 선택, 취업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결혼하기 싫다는 게 아니에요. 출산도 힘들지만 양육이 너무 부담된다고 합니다. 여전히 여성의 몫이죠. 앞으로는 남녀 성역할 구분 없이 집안일 부담을 나눠 갖지 않고는 가정을 꾸리기 힘들 거예요.”
28일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 순헌관 생활과학대학장실에서 만난 박미석 교수(58·사진)는 올해 봄학기에 ‘결혼과 가족’ 과목을 강의한 에피소드부터 털어놨다. 수강한 여대생 150명 대부분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모든 걸 희생할 만큼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박 교수는 전했다.
큰일이라고 느꼈다. 가정이 흔들리고 저출산의 골이 깊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또 다른 걱정은 신세대마저 ‘여성이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책임진다’는 고정관념에 갇혀있다는 것이었다. 단 여성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봤다. 박 교수는 “가정을 함께 꾸리고 책임져야 할 남성의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짚었다.
그가 양성평등 가정문화가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강조하는 배경이 있다. 박 교수는 다음달 31일부터 한 주간 대전에서 열리는 제23차 세계가정학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대회는 ‘오늘의 행복, 내일의 희망을 위한 가정의 역할’ ‘가정의 안전과 건강’ ‘올바른 양육행동과 부모의 역할’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주제로 다룬다.
세계가정학대회는 UN 및 유럽이사회와 대등한 지위로 협상할 수 있는 국제 비정부기구(NGO) 지위의 세계가정학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행사다. 가정과 관련된 모든 주제를 논의한다. 2008년에 대회를 유치한 뒤 박 교수가 2014년부터 조직위원장을 맡아 행사 준비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 세계가정학대회 한국 유치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세계가정학회는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어요. 1908년 설립 이래 한국에서 처음 대회가 열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1200명의 가정학자가 모입니다. 2008년 대회 유치 당시 국내 학자가 아시아에선 최초로 세계가정학회장을 맡았던 영향도 있었겠죠. 대전시도 굉장한 관심을 보여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 무슨 얘기가 나올까요.
“크게 가정생활과 행복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아동학대도 있고, 부모가 자녀를 ‘소유’하려는 그릇된 태도도 문제인데요. 이런 점에서 부모에게도 가정을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은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갖는 사안이구요.”
-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은 스스로도 겪은 문제겠습니다.
“그렇죠. 가정 내에서 양성평등 문화가 뿌리내려야 해요. 더 이상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전담하는 ‘슈퍼우먼’을 요구해선 안 됩니다. 부부관계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화해야 해요. 집안에서의 남성 역할이 확 바뀌어야 하고, 국가 차원의 여러 자녀양육 지원책도 뒷받침돼야죠.”
- 우리나라의 가정 내 양성평등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리나라의 전체 사회발전 수준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죠. 제가 해외유학 할 때 기억이 나요. 같이 공부하던 레바논 유학생은 집에 가면 남편이 밥 해놓고 집안 치워놨다고 하더군요. 참 부러웠어요. 저는 아이 집에 데려가고 밥 하는 일이 모두 제 몫이었거든요. 저희 세대가 샌드위치 세대 같긴 합니다. (웃음)”
- 요즘 여대생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하셨잖아요.
“맞아요. 젊은 여성들은 남녀 가사분담이 전제되지 않으면 결혼을 안 하려고 해요. 자연히 저출산 문제까지 심각해지는데요. 가정학은 주로 환경변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 변화, 양육시스템 악화에 경제적 상황까지 겹쳤죠. 우선 남성들이 확 바뀌어야 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합니까.
“지금 신세대 여성들도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봐요. 자녀양육이나 가사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결혼을 기피하는 거죠. 문제를 풀려면 남녀가 성역할 구분 없이 평등하게, 기존 주부의 역할을 나눠 갖는 문화부터 필요합니다. 아기가 밤에 깨면 남성이 분유 먹여 재우는 게 자연스러워야죠.”
그는 열린 사고를 주문했다. 특히 전통적 혈연공동체 개념을 벗어나 1인가구, 다문화가정 등 다양한 형태의 생활공동체 가족개념을 받아들이자고 제안했다. 집안 문제는 집안에서 해결할 일이라는 발상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가정의 문제를 가족들끼리 해결하라고 내버려뒀다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소속 학과 명칭이 ‘가족자원경영학과’입니다.
“시대 흐름에 맞춰 명칭을 바꾼 측면도 있고요. 가정학은 생활에 필요한 여러 지식을 생산하고 가정을 관리하는 학문이거든요. 특히 ‘공공가정관리’ 개념은 단체로 생활하는 가정도 다룹니다. 전통적 가정의 개념을 어린이집, 요양원 등으로 범위를 넓히는 거죠.”
- 1인가구, 다문화가정 등 기존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있죠.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정을 ‘생활공동체’와 ‘생활단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혈연에서 벗어나 가족 개념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죠. 다문화·한부모·공동체·동성애가족 등에다 최근 결혼 기피 추세로 인한 1인가족까지 다양한 형태가 나타나고 있어요. 각각의 요구와 필요를 파악해 맞춤형 지원책이 나와야 합니다.”
- 혼자 살면 “가족이 없다”고들 하는데 1인가족으로 인정하자는 건가요.
“가정학은 새롭게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개념을 받아들여 그 요구를 지속적으로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가정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사회변화에 맞춰 여러 방안을 강구하는 학문이란 점에서 가정학은 실천학문이자 통합학문이에요. 쾌적한 주거환경, 가족의 영양과 섭생, 구성원간 소통까지 아우릅니다.”
- 휴식과 재생산의 공간인 가정이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아동학대나 친족갈등 같은 드러난 문제 외에도 내부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적지 않아요. 문제는 집안의 갈등상황을 스스로 풀려고만 한다는 겁니다. 해결이 쉽지 않다면 여성가족부가 지원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 같은 기관에 손을 내밀어보세요. 위기·취약가정을 돕는 다양한 지원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 집안일을 밖에 알리는 데 거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럴 필요가 없어요. 패러다임을 바꾸면 됩니다. 집안 문제를 밖에 알리고 도움 받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죠. 건강가정지원센터는 전국에 161곳 있습니다.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도움을 얻어 가정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요. 이번 세계대회에서도 센터 운영사례를 발표합니다.”
- 해외에서도 관심 있는 모델인가 봅니다.
“건강가정기본법과 건강가정지원세터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모델이에요. 다들 벤치마킹하려 해서 부스를 설치해 센터를 적극 알릴 예정입니다. 또 한국의 가정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홈비지트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반응이 뜨거워요. 대회 기간에 각국 가정학자들이 프로그램에 신청한 250가정을 방문합니다. 굉장히 기대됩니다.”
◆ 박미석 교수는…
숙명여대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모교 교수로 재직하며 아시아여성연구소장, 생활과학대학장 등의 보직을 거쳤다.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대한가정학회장, 아시아가정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세계가정학회 부회장과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가정관리학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동안 가정학 분야 연구에 매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달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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