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에 야당 국회의장이 나왔다. 정세균 의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민에게 짐이 아니라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일성도 그렇지만 그는 타고난 의회주의자다. 국가 의전서열 2위의 권한은 막강하다. 국회 의사지휘권뿐만 아니라 직권상정권까지 갖는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요건이 엄격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의장 마음먹기에 달렸다. 알게모르게 국회는 거대한 조직이 돼 있다. 그러니 정부와의 권한 다툼도 겁날 것이 없다는 식이다. 국회의 슬림화도 정세균 의장의 임무다.
국회의장의 더 중요한 임무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이다. 여야 의원 모두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중진의원 중에서 의장을 뽑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적을 버려야 하지만 정당으로서는 얻는 것이 훨씬 많다. 이 때문에 한 달 이상 의장단 구성이 지연된 사례도 많다. 다행히 이번에는 새누리의 양보로 소모전을 줄였다.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는 다수당이 의장단을 선출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연방 상·하원 의장을 따로 뽑는다. 상원의장은 부통령이 겸하지만 실권은 없다. 투표권도 없고, 가부 동수일 때만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우리처럼 막강한 입법권을 갖는 건 하원의장이다. 미국 정치 뉴스에서 대통령과 함께 1면을 장식하는 것 역시 하원의장이다. 예산안을 처리하는 힘의 원천이 하원에 있다.
미국 하원의장은 우리와 달리 당적을 그대로 갖는다. ‘다수당 책임정치’다. 여소야대 국면에선 하원의장이 대통령의 최대 ‘적수’다. 이런 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책무도 막중하다. 200년 넘는 미국 정치의 균형과 발전이 여기서 가능했다. 지금 한국은 국회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 이른바 ‘의회독재’에 이르렀다는 것이 문제다.
새 국회의장의 의욕이 조금은 과한 것 같다. 그가 “여당을 심판하고 의회권력을 교체한 총선 민심과 산업·경제 전반의 위기, 정권의 레임덕, 삼권분립·헌법정신의 위협, 깊어지는 정치 무관심, 대선까지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조바심 등…”을 모두 언급한 것은 걱정스럽다. 과욕은 항상 논란을 불러왔다. 그것은 19대 국회 마지막 날의 정의화 의장이 잘 보여주었다. 정 전 의장의 ‘작품’은 대통령에 의해 깨끗하게 거부됐다. 신임 정세균 의장은 그의 성품 만큼이나 ‘조용한 중재자’로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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