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차별 딛고 세계 챔피언 올라
베트남 참전 거부로 선수자격 박탈
은퇴 후 32년간 파킨슨병 투병
"위대한 거인 잃었다" 각계 추모
[ 최진석 기자 ]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지난 4일 알리의 대변인 밥 거닐은 “3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은 알리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알리는 1960~1970년대를 풍미한 ‘20세기 최고의 복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단순히 챔피언이 아니라 위대한 인물로 존경받는 이유는 평생 ‘3적(敵)과 싸운 투사’이기 때문이다. 알리는 선수 시절 사각의 링 안에서 소니 리스턴, 조지 포먼 등 강적들과 싸워 승리했다. 동시에 링 밖에선 전쟁을 거부하고 인종차별과 싸웠다. 은퇴 후에는 수십년간 파킨슨병과 싸워야 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강펀치를 휘두른 그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는 추모의 물결을 이뤘다. 알리의 장례식은 오는 10일 그의 고향인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치러진다.
◆금메달을 강에 던지다
알리는 1942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복싱을 시작해 18세에 아마추어 무대에서 180승을 거두며 유명세를 얻었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라이트 헤비급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올림픽 이후에도 햄버거집에서 쫓겨나는 등 백인들의 멸시를 받은 알리는 오하이오강에 메달을 던져버리고 프로로 전향했다. 당시 그는 “로마올림픽에서 품은 ‘내가 미국을 대표한다’는 환상이 깨졌다”고 말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겠다”
알리는 1964년 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WBA·WBC 통합 챔피언 리스턴을 꺾고 처음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알리는 경기 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말했다. 당시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던 리스턴을 제압한 알리는 “나는 세상의 왕”이라고 호기롭게 외쳤다.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다. 인종차별에 맞선 알리는 “노예에게 부여한 성을 쓰지 않겠다”며 이름을 캐시어스 엑스로 바꿨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 지도자 맬컴 엑스의 영향이었다. 이후에는 이슬람교 운동조직 지도자인 엘리야 무하마드에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받았다.
◆“베트콩은 흑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알리는 베트남전쟁 때 나온 징집영장도 거부했다. 그는 “베트콩은 나를 흑인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며 “내가 왜 그들과 싸워야 하느냐”고 했다. 이로 인해 그는 3년간 선수 자격이 정지되고 챔피언 자격도 박탈당했다. 징계가 풀리자 그는 1974년 10월 아프리카 콩고에서 포먼과 맞붙었다. 당시 26세의 포먼은 WBA·WBC 통합 챔피언, 알리는 긴 공백기를 보낸 32세의 아웃복서였다. 알리는 예상을 뒤집고 포먼을 8회 KO로 눕히고 챔피언 타이틀을 되찾았다. 1981년 은퇴할 때까지 알리는 총 세 차례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고, 19차례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통산 전적은 56승(37KO) 5패.
◆오바마 “알리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알리는 은퇴 3년 뒤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몸은 굳어갔지만 평화, 인권을 위한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1996년엔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에 성화 최종 점화자로 등장해 세계인에게 감동을 안겼다.
알리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알리는 세상을 뒤흔들었다”며 “세상은 그로 인해 더 나아졌다”고 추모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알리는 평등과 평화의 세계 챔피언”이라고 말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신께서 챔피언을 데리러 오셨다”고 애도했다. 필리핀의 복싱 영웅인 매니 파키아오는 “오늘 위대한 거인을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함께 명승부를 펼친 포먼도 “나의 가장 위대한 일부분이 사라졌다”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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