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503.06

  • 17.30
  • 0.69%
코스닥

692.00

  • 1.15
  • 0.17%
1/3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24)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지금 이순간 방황하고 있다면 홀든을 만나라
3일간 방황 꿈을 찾고 집으로…



금서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으로

‘감명깊게 읽은 책’ 추천을 요청받으면 <호밀밭의 파수꾼>을 빼놓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감명은 좀 다른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썼을까?’‘어쩜 이렇게도 감정 표현이 독특할까?’‘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자 샐린저의 천재성에 질투를 하게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영화, 문학, 음악 등 문화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매혹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으며,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로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저자 샐린저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샐린저가 32세에 쓴 자전적 소설이다. 중학교 때 성적 불량으로 퇴학을 당한 후, 15세 되던 해 밸리 포지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갔던 샐린저는 어시너스 칼리지와 컬럼비아 대?등에서 문예창작 수업을 받았다. 1952년 발표 당시 뉴욕의 풍경이 세세하게 담겨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주인공 홀든과 함께 뉴욕을 여행하면서 생각에 푹 빠지게 된다.

펜시고등학교에서 성적불량으로 퇴학처분을 받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 다가오는 수요일에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열여섯 살 홀든은 일요일 밤에 기숙사를 나와 2박 3일간 뉴욕을 떠돈다.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퇴학을 당한 문제아가 주인공인 데다 뉴욕 유흥가를 거침없이 누비는 행보 때문에 중·고등학교에서 금서로 지정했다. 하지만 20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현재 세계 청소년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홀든의 방황을 통한 간접경험

금서로 지정한 것은 어른들의 기우에 불과하다. 홀든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나쁜 행동을 하기보다 어른들의 행태를 통해 오히려 많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설 속 홀든처럼 학교를 박차고 나와 세상을 두루 살펴볼 필요는 없다. 이번 여름방학 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홀든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호텔 보이에게 사기당한 일, 정말 좋아하는 제인이 아닌 샐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후회하는 일 등. 2박 3일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난다. 홀든은 혼란을 겪으면서 현?상황을 불평하고 미래를 어둡게만 본다. 혼돈 속에서도 홀든은 거리에서 모금을 하는 수녀들에게 기부를 하고, 연못의 오리들이 겨울이면 어디에서 지내는지 걱정한다. 죽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잊지 못하는 엄마 생각에 애잔하다.

홀든은 사랑하는 여동생 피비를 만나고파 몰래 집으로 들어가고 영특한 피비는 수요일이 되기 전에 돌아온 오빠에게 “또 퇴학당했냐”고 다그친다. 피비는 이미 여러 학교에서 퇴학당한 적이 있는 오빠에게 “앞으로 대체 어떤 사람이 될거냐”며 걱정한다. 이때 “호밑밭에서 노는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홀든에게 독자들은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동생을 사랑하는 소년

집을 빠져나온 홀든은 학생들을 잘 돌봐주고 희생적인 앤톨리니 선생님을 찾아간다. 앤톨리니 선생님은 홀든의 눈높이에 맞춰 얘기하되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말을 잊지 않는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찾고 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학교에 들어가는 일이어야 할 거야…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갖고 있다면, 그냥 재능있고 창조력 있는 사람보다 훨씬 가치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라고.

다시 혼자가 된 홀든은 정신적으로 혼돈을 느끼고, 결국 서부로 도피해 拷緞타?행세를 하며 살아갈 결심을 한다. 마지막으로 동생 피비를 만나고 싶어 ‘서부로 떠날 예정이니 박물관으로 나와 달라’는 쪽지를 보낸다. 가방을 싸들고 나타난 피비가 ‘나도 서부로 갈 테야’라고 하자 홀든은 사랑하는 동생을 말리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방황을 겪게 된다. 요즘 어른이 되어서도 흔들리는 이들이 많다. 그 혼돈의 시기를 지혜롭게 넘기고 삶을 잘 다져야 ‘절벽 옆에서 노는 위험한 아이를 구하는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이다.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유명인이 되었지만 서부가 아닌 자신의 방안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지 않다가 2010년 세상을 떠났다. 2박3일간 뉴욕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난 홀든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 때문일까?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 맨 마지막에 그 답을 적어 놓았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홀든은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형에게 그간의 얘기를 털어놓으면서 정말 싫어했던 기숙사 친구들까지 그립다고 말한다. 정말 웃긴 일이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이근미 < 소설가 >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