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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단위의 변경은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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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장롱이나 서랍장을 정리하다보면 눈에 익지 않은 오래된 동전이나 지폐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세월이 지난 화폐를 보면, 시대에 따라 그 모양뿐만 아니라 금액을 나타내는 단위 또한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화폐는 시대 및 국가별 상황에 따라 정책적 차원에서 새로운 형태로 변환되곤 한다. 이처럼 정책적 혹은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존 화폐의 유통을 중지시키고, 새로운 화폐로 교환하는 조치를 '화폐개혁'이라고 하는데, 국가는 화폐개혁을 통해 화폐 가치를 조절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05년, 1950년, 1953년, 1962년 4차례에 걸쳐 화폐개혁이 시행되었다. 1905년의 화폐개혁은 ‘화폐정리사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본이 조선에 대한 경제침탈을 목적으로 시행한 화폐개혁이기에 우리나라가 자주적 의지로 실시한 화폐개혁은 3차례로 볼 수 있다.

1950년의 화폐개혁은 한국전쟁 중 시행되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 중 불법으로 발행된 화폐가 남발되고 있었고, 북한화폐도 유통되던 상황이기에 경제를 교란시키는 요인들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당시 상용되고 있던 조선은행권 유통을 금지하고 이를 畸뮌뵉汐퓽막?등가교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1953년의 화폐개혁은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막대한 전쟁비용 지출 등의 이유로 통화가 남발되어 문제가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생산활동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거액의 군사비가 지출되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1953년 2월 17일부터 통화단위를 100분의 1로 절하하고 화폐호칭을 원(圓)에서 환()으로 변경하는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이후 한국전쟁 이후 급등하던 물가는 1958년에 이르러 안정되었고, 화폐가치에 대한 신뢰도도 회복되었다.

1962년의 화폐개혁 역시 1953년과 비슷한 목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등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행되었다. 안정적인 통화신용 및 외환정책 등을 위해 환() 표시의 화폐를 원(圓)으로 변경했으며 10환을 1원으로 변경하여 단위의 크기 또한 변경했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화폐개혁은 주로 경제상황을 안정되게 시정하고, 적절한 물가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통화단위의 명칭을 변경하고 화폐단위를 낮추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화폐개혁 중 이와 같이 화폐의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는데, 바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라고 한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쉽게 말해 통화단위 명칭 절하를 의미한다. 10환을 1원으로 변경한 것처럼 흔히 통화단위의 자릿수가 변경 전보다 적어지기에 통화의 가치 자체가 낮아진다고 착가할 수 있으나 리디노미네이션은 통화의 가치를 절하하는 평가절하와는 다르다. 화폐단위로 표시되는 물가, 임금, 채무채권액 등의 경제적 가치 및 이들 간의 관계는 ?舊?않고, 다만 모든 금액이 일률적으로 단위가 바뀌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주로 심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금액의 표시가 방대해짐으로 인해 계산이나 지불 등 화폐 사용 및 기록이 매우 불편해졌을 경우 행해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작년 9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는 발언을 하여 국내 리디노미네이션 시행 여부에 관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실 한국의 화폐는 다른 국가의 화폐와 비교시 단위 크기가 상당히 큰 편에 속한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약 1,190원인데, OECD 국가 중 네 자릿수 환율을 가진 국가는 오직 한국뿐이다. 쉽게 말해, 달러로 표시한다면 1$, 한 자릿수로 표시할 수 있는 가격을 원화로 표시한다면 1,190원, 네 자릿수로 표기해야 하니 계산 및 표기 등에 있어 비효율을 야기한다. 실제로 음식점이나 카페 등 다양한 메뉴를 보유하고 있는 가게에 가면, 메뉴판에 가격을 1000원 단위를 생략하고 표기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4,500원 커피 가격을 4.5로 표기하는 식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화폐단위가 방대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연말에 기업들이 회계처리를 할 때에는 0이 16개인 경단위를 쓰는 상황이라고 하니, 계산 및 지불, 기록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리디노미네이션 도입에 대한 주장이 야기될 만하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의 장단점은 매우 극명해서 시행 여부를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장점은 첫째로, 대내적으로 거래나 장부 기재가 편리해짐에 따라 경제 규모에 걸맞게 국민들의 경제활동 수준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한 고액권 발행에 대한 부담을 줄여 국가적 낭비를 줄일 수 있으며 환율이 한 자릿수?조정되어 국내 화폐의 대외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반면에 리디노미네이션은 새 화폐를 만들고 각 금융회사들이 이와 관련된 기기 및 프로그램을 교체해야하기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또한 표면상 화폐가치는 변화 없이 화폐단위만 변한다 하더라도 화폐변경은 경제 주체들의 불안감을 초래하기에 물가 및 환율 변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부 경제 주체들이 화폐변경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화폐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부동산과 같은 실물자산에 과도하게 투자함으로 인해 물가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또는 모든 상품의 가격이 동시에 바뀜으로 인해 혼돈 상태가 야기되어 물가상승이 일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로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몇몇 국가들을 보면 성공 및 실패 결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인 터키의 경우, 2005년에 화폐단위를 100만분의 1수준으로 절하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짐바브웨의 경우에는 경기악화 및 지속되는 화폐가치 하락을 시정하고자 2006년, 화폐단위를 1000분의 1수준으로 절하했으나 인플레이션을 조정하지 못했다. 몇 해에 걸쳐 화폐단위를 낮추는 정책을 지속했지만 2008년에는 물가상승률이 5000억%나 되는 등 심각한 인플레이션만 야기됐다.

물론 이 두 국가의 경우 심각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한 사례이기에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리디노미네이션이 경제적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책시행에 따른 장단점의 격차가 크며 이는 우리경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인 물가와 서민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우리나라의 화폐단위 변경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기란 아직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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