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대선주자가 풍년이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고 ‘나를 주목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마저 엊그제 관훈토론회에 나와 때이른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신중함이 트레이드 마크인 그가 ‘반기문 대망론’을 자가발전하고 나서자, 정치판은 이해득실을 따지며 벌집 쑤신 듯하다. 1년 반이나 남은 대선전이 벌써 숨가쁜 레이스로 돌입한 분위기다.
반 총장뿐만 아니다. 은인자중하던 여야의 ‘잠룡’들은 최근 1~2주 새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정의화 국회의장, 안희정 충남지사, 손학규 전 의원 등이 뒤질세라 앞다퉈 대권 의지를 노골화했다. ‘설마 대권 도전까지야…’라던 박지원 원내대표, 김종인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등도 ‘나라고 왜 안 되겠느냐’며 열심히 군불을 때는 중이다.
수년째 거의 매일 국민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김무성이 다소 식상한 후보들이라면 국민에게 선택지가 다양해진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무제한적 정치공세들이 그나마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라경제를 더욱 파국으로 휘몰아 가지나 않을지 우려도 만만치 않다.
후보들의 면면도 그렇다. 뚜렷한 대표 주자가 없는 공백을 틈타 ‘때는 이때다’라며 노이 ?마케팅으로 ‘몸값 올리기’에 나선 꾼들은 정치를 더욱 궁지로 몰아갈 충분한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도 대권욕이 있다’거나 ‘몸을 풀고 있다’는 식의 저급한 발언에서는 기회주의적 천박성마저 느껴진다. 대권 경쟁은 나라를 살리는 경쟁보다는 나라를 죽이는 경쟁에 함몰되고 있는 양상이다. 현 정부가 실패로 끝나기를 바라고 저주하는 듯한 태도들은 외환위기 당시와 다를 바가 없다.
후보는 벌써 난립이지만 정치적 비전은 아예 관심조차 없다. 반 총장은 ‘정부직 진출 자제’를 권고한 UN 결의 위반 여부는 물론이고 지역정서에 의존하는 정치구조에 대해서도 적절한 해명이 필요하다. 정의화 의장은 입법부 수장직을 ‘자기 정치’에 악용했다는 비판부터 살피는 게 바른 순서다. 박 시장도 ‘시정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던 약속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 박지원·김종인 대표의 경우 뇌물 전과이력이 대통령직 수행의 결격사유라는 비판에 대해 답해야 한다. 김무성 의원은 ‘총선 패장’으로서의 책임 있는 행보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문재인·안철수 의원도 나라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오랜 비판을 직시해야 한다.
때이른 대선후보 난립을 대하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대부분이 ‘식물국회’로 나라 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주범들인데, 반성은커녕 벌써 낯 뜨거운 이전투구에 나서고 있다. ‘권력의 실패’를 부추기는 듯한 대권후보들의 사보타주 전략들이 국가를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후보들은 나라 꼴이 엉망이기 때문에 내가 나선다고 할지 모르지만 국민이 볼 때는 정확히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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