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물을 사 먹는다는 게 영 이상했다. 석회질 토양의 유럽이야 그렇다 치고 물 맑은 우리나라에서 ‘웬 봉이 김선달이냐’ 했다. 이제는 산소까지 사서 마시는 시대가 됐다. 공기 나쁜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잠수사 등 특수직 종사자뿐만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까지 앞다퉈 구매하고 있다.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이다.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버튼을 누르면 산소가 나오는 스프레이형의 휴대용 산소캔이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산소캔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2.5배나 늘었다. 월별로는 미세먼지 주의보가 많은 3~4월에 많이 팔렸다. 단순히 먼지를 차단하는 수준을 넘어 비용이 들더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려는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산소를 캔에 담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대기 중에 있는 공기를 모아 특수장치로 산소와 질소를 분리한다. 그런 다음 산소를 고압으로 압축해 탱크에 넣고 이를 캔에 하나씩 주입한다. 여기에 피톤치드나 라벤더향, 페퍼민트향 등을 가미하는 경우도 있다. 사용할 땐 뚜껑을 입에 물고 버튼을 누르면서 흡입한다.
효능은 어느 정도일까. 건국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산소가 인지능력을 다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에 참가한 두 그룹에 일반 공기와 같은 농도의 산소(21%)와 고농도 산소(30%)를 일정하게 공급한 뒤 공간·지각 능력을 측정했더니 고농도 산소 그룹의 반응이 빨랐다고 한다. 그러나 산소 농도가 무조건 높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의견도 많다. 대부분의 산소캔은 95% 이상의 ‘초고농도 산소’를 담고 있어 오래 흡입하면 과(過)산소증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 보고서에도 “고농도 산소에 오래 노출되면 산소 독성을 악화시키는 염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활성산소가 폐의 세포들을 자극해 백혈구 동원을 유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산소캔 제조회사 관계자도 “산소를 많이 마신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 한 번에 2초씩 하루 3~4회 정도 흡입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 우리 몸의 면역력과 치유력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산소를 돈 주고 사 마실 지경이 됐을까마는 행여 공포 마케팅과 상술에 휘둘리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나친 건강염려증 또한 병이다. 차라리 산에 자주 가는 게 더 낫다. 돈도 안 들고 운동까지 겸하니 일석이조다. 물론 환경부도 ‘클린 디젤’ 같은 헛구호에 속지 말고 근본 처방을 찾아야 하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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