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훈 사장의 해태제과, 11일 증시 상장
신정훈의 역발상 통했다
점유율 '꼴찌' 감자칩 시장서 단맛나는 감자칩으로 부활 발판
허니버터칩2공장 가동 '겹경사'
숫자·스피드·제휴가 경영 키워드…점유율 등 숫자 점검하며 구상
멜라민 파동 땐 즉각 생산중단…버터맛은 일본 가루비 벤치마킹
"늘 새로운 맛의 트렌드 리더 될 것"
[ 김용준 기자 ]
2012년 말 신정훈 해태제과식품 사장은 사무실에서 제품별 시장 점유율 자료를 보고 있었다. 답답했다. 감자칩 때문이었다. 시장 점유율 9.7%. 3대 업체 중 꼴찌였다. 한참 고민하다 문득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데 어떤 모험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칩 시장을 분석했다. 모든 감자칩이 짠맛이었다. 신 사장은 ‘감자칩은 짜야 한다는 게 왜 상식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의문은 ‘단맛 감자칩은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허니버터칩의 제품 콘셉트가 탄생한 순간이다. 신 사장 주도로 내놓은 허니버터칩은 품귀 현상을 빚으며 대히트로 이어졌다. ‘해태제과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라
해태제과는 10일 강원 문막에 새로 지은 허니버터칩 제2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국내에 과자공장이 새로 지어진 것은 10년 만에 처음이다. 허니버터칩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려 품귀 현상을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해태는 허니버터칩만으로 연간 18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 공장 가동은 11일 증시 상장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다. 옛 해태제과는 2001년 상장폐지됐다. 크라운이 인수한 뒤 15년 만에 증시에 새로 입성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해태제과 부활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신 사장을 꼽는다. 그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의 사위다. 2005년 크라운이 해태제과를 인수할 때 사장으로 왔다.
신 사장이 부임한 뒤 처음 한 일은 직원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법정관리와 매각을 거치며 해태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다. 2006년 직원들을 데리고 한강으로 나갔다. 한강을 따라 걷는 트레킹 행사를 벌였다. “나는 해태 직원이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종 사내행사를 열고, 직접 독서 토론회를 하며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신 사장은 “직원의 아이디어를 즉각 받아들이는 것만큼 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부라보콘 디자인 교체 등 직원들끼리 오가던 아이디어를 곧장 실행에 옮기게 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조직’이라고 느끼면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사장은 숫자 중심의 문화도 심었다. 해태의 모든 결정은 숫자를 근거로 한다. 전 부서에 핵심성과지표(KPI)를 도입했다. 직원들도 숫자로 무장하게 했다. “숫자가 있으면 결정이 빨라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점유율 9.7%라는 수치는 단맛 감자칩이라는 역발상으로 이어졌다.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이어지는 것을 숫자로 확인한 뒤 그는 짧은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고를 받자마자 회의 자리에서 8시간 1교대를 24시간 3교대 근무로 바꾸기도 했다.
◆전략적 제휴로 ‘마지막 문제’ 해결
위기도 있었다. 2008년 멜라민 파동이 터졌다. 공업용 화학물질이 중국에서 들여온 과자 제품에 들어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신 사장은 태스크포스 팀장을 맡아 위기를 수습했다. 즉시 사과했다. 동시에 모든 제품을 회수하고,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윤영달 회장과 함께 전국을 돌며 사죄의 문화공연도 했다. 이는 위기관리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신 사장이 일본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은 것도 회사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일이다. 해태는 ‘단맛 감자칩’을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원료로 꿀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젊은이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즈음 일본 과자 시식회가 열렸다. 일본에 출장간 직원이 가져온 과자를 맛보는 자리였다. 시식 중 버터맛 과자 앞에서 신 사장은 멈춰섰다. “그래 이거야”라고 외쳤다. 다른 직원들 반응도 좋았다. 제조회사를 보니 2011년 함께 합작회사를 세운 일본 가루비였다. 가루비에 연락해 참고할 제품을 요청했다. 2014년 8월 허니버터칩을 내놨다.
허니버터칩이란 이름도 신 사장이 직접 선택했다. 당초 ‘버터위의 꿀감자’ ‘버 尻?감자랑’ ‘꿀먹은 버터칩’ 등이 유력 후보였다. 신 사장은 “과자 이름은 맛의 본질을 나타내고 단순할수록 좋다”며 꼴찌로 올라온 후보를 끌어올렸다.
5년 후 해태제과의 모습에 대해 신 사장은 “트렌드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과자를 생산할 뿐 아니라 새로운 맛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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