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R 보기 없이 6언더파 2타 차 단독선두
코스 샅샅이 뒤지며 준비한 전략 주효
대니 리 공동 2위…안병훈은 탈락 위기
[ 이관우 기자 ]
‘쇼트 게임의 달인’ 필 미컬슨(미국)은 올해로 24번째 마스터스에 출전했다. 메모광인 그는 늘 두꺼운 노트 한 권을 끼고 대회장에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명 ‘마스터스 족보’ 노트다. 그린의 굴곡과 풍향은 물론 언제 어디서 몇 번 클럽으로 샷을 했는지 수십년의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 23년간 우승 3회, 준우승 6회를 수확한 그가 ‘마스터스에 최적화된 선수’로 불리는 것도 그만의 ‘마스터스 빅데이터’ 덕분이라는 평도 많다.
하지만 앞으로 그는 두꺼운 ‘족보’보다 ‘닮은꼴 강적’과 씨름할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처럼 준비에 철두철미한 조던 스피스(미국)가 마스터스의 새 라이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준비의 달인’ 스피스 “계획 대로 간다!”
스피스는 미컬슨 못지않은 ‘준비광’이다. 연습라운드를 ‘리스크 헤지’ 기회로 활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티샷을 일부러 러프나 벙커로 보낸 뒤 다음 샷을 어떻게 할지 연구한다. 그의 코치인 캐머런 매코믹은 “연습라운드가 끝난 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숙소에 돌아온 캐디를 다시 코스로 보내 공이 러프에 떨어졌을 때 레이업샷을 어떻게 할지 정보를 수집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그의 캐디 마이클 그렐러와 함께 대회마다 수학 방정식을 풀 듯 코스 공략법을 준비하고 논의한다는 것이다. 그렐러는 전직 수학교사 출신이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으면 시뮬레이터(스크린골프)로 코스를 다시 연구한다.
올해 마스터스에서도 스피스식 ‘준비’가 다시 효험을 볼 참이다. 8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7435야드)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에서 그는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뽑아내며 6언더파를 쳤다. 2위 그룹을 2타 차로 따돌린 단독선두다. 제이슨 데이(호주)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등 그와 함께 ‘빅3’로 불리는 라이벌들이 보기와 트리플 보기를 오가며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는 대조적인 성적이다. 매킬로이는 4언더파까지 치고 나갔다가 막판 퍼팅 난조로 2언더파 공동 9위에, 전반에 보기 없이 5언더파를 친 데이는 후반에만 5타를 까먹어 이븐파 공동 21위에 머물렀다.
아직 3개 라운드가 남아 있어 스피스의 압승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고, 핀의 위치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대회 특성상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스피스는 1라운드 후 인터뷰에서 “준비한 대로 경기가 풀렸다. 퍼팅만 잘 떨어져 준다면 우리 방식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스피스와 1라운드 동반 플레이를 한 아마추어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는 “퍼팅할 때 바람의 방향과 세기까지 고려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디섐보는 데이, 미컬슨과 같은 이븐파를 쳤다. 아마추어 첫 예선 통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성적이다.
스피스가 한 라운드를 더 선두로 나서면 1961년 마스터스 6라운드 연속 선두 기록을 보유한 아널드 파머를 넘어서게 된다. 최종 우승까지 내달린다면 잭 니클라우스(미국), 닉 팔도(잉글랜드), 타이거 우즈(미국)에 이어 네 번째로 마스터스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 선수가 된다.
◆공동 2위 대니 리 “감 좋다”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이진명·26·사진)는 4언더파를 쳐 셰인 로리(북아일랜드)와 공동 2위에 올라 첫 메이저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마지막 18번홀에서 티샷이 숲으로 들어가는 위기를 맞았지만 아이언으로 강력한 훅샷(왼쪽으로 크게 휘는 구질)을 쳐 그린 근처까지 보낸 뒤 파를 잡아냈다.
개막전 파3 콘테스트에서 ‘랑데부 홀인원’을 기록한 리키 파울러(미국)와 스피스의 ‘절친’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각각 8오버파, 4오버파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목 통증을 딛고 경기에 나선 안병훈(25·CJ)은 5오버파 77타(공동 71위)를 쳐 2010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예선 탈락 위기에 몰렸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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