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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14) 팀 보울러 '리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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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가족이 며칠간 겪는 감동의 이야기
흐르는 강물같은 삶을 알려주는 리버보이



해리포터를 누르고 카네기 메달

청소년기에는 키가 부쩍 자란다. 그렇다면 마음은 언제 자랄까? 아마도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질 때 성숙해지지 않을까? 청소년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헤어질 확률이 높다. 10대는 ‘죽음’을 구체적으로 알기 힘든 나이지만,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이별을 경험하게 된다.

《리버보이》는 수영을 아주 잘하는 열다섯 살 소녀 제스가 할아버지와 헤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진지한 주제이나 무겁지 않은 《리버보이》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청소년들과 내면에 어린아이를 숨겨놓은 어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는 팀 보울러의 바람대로.

1997년 ‘미스터리한 설정과 서정적인 묘사, 깊은 주제의식’을 높이 산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제61회 카네기 메달을 《리버보이》에 안기기로 결정했다. 5억권이 넘게 팔린 《해리포터》를 누르는 바람에 유명세를 떨쳤다. 곧이어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 21개국에서 판권 요청이 쇄도했고, 우리나라에서?2007년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로는 드물게 죽음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결코 칙칙하지 않게, 너무 가볍지 않게, 지나치게 교훈적이지 않게 이별을 그려냈다.

제스의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가기로 했을 때 할아버지의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휴가를 취소하고 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고집쟁이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여행을 강행한다. 화가인 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린 이유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다.

가족들은 인적이 드문 강가의 별장에 도착했고, 할아버지는 제스의 응원을 받으며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 가족들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고집쟁이 할아버지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병원행을 거부하고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걱정스러운 제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아름다운 바다에 닿는 삶

강에서 수영을 하면서, 또 할아버지가 꼭 가보라고 권한 강이 시작되는 곳에서 제스는 언뜻 언뜻 나타나는 리버보이와 마주친다. 실체가 있는 듯 없는 듯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복잡한 제스. 결국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할 지경에 이른 할아버지, 점점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강가에서 슬퍼하는 제스에게 나타난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같이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느냐는 해법을 알려준다. 더욱 쇠약해진 할아버지가 그림을 포기하고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정하지만 제스는 할아버지에게 그림을 완성하라고 응원한다. 제스가 손을 잡아드려 그림을 완성한 뒤 자리에 눕고 만다.

절망적인 제스는 다시 만난 리버보이와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멀리 바다까지 뻗어 있는 강을 보면서 리버보이는 강물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결국 아름다운 바다에 닿는다고 말한다. 제스는 “하지만 죽음은 아름답지 않아”라며 슬퍼한다. 리버보이는 아름답지 않은 건 죽음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라며 강이 계속 흘러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고 말해준다.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리버보이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순 없지만 제스는 바다를 향해 헤엄치기로 한다.

슬픔을 삭이는 소녀와의 교감

불가능할 것 같은 먼 거리를 헤엄쳐 바다로 가는 제스는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리버보이가 유령이 아니라 요정이며 할아버지의 삶이 일으킨 축복이자 자신에게 찾아온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멀리까지 헤엄칠 수 있는 힘, 할아버지와 헤어질 용기를 준 강의 요정 리버보이를 생각하며 마지막 힘을 내서 바다에 도착한 제스는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제스는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들고 강의 시작점을 찾아가 가루를 강물에 흘려보낸다. 두려워서 용기를 내지 못했던 폭포 아래로 뛰어들면서 제스는 할아버지와 리버보이에게 안녕을 고한다.

저자 팀 보울러는 ‘인생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말한다. 《리버보이》는 삶과 죽음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강물이 흘러 넓은 바다에 닿는, 필연적인 이치’에 담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네 명의 가족이 겪는 단 며칠간의 이야기가 긴장감과 함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리버보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적절히 사용한 덕이다.

지금은 힘없이 누워 있지만 소년시절 산천을 누비고 다녔을 리버보이 같은 할아버지, 곧 일어날 이별을 예견하고 슬픔을 삭이는 소녀와 리버보이의 교감, 이 모든 것이 독자들에게 강물처럼 와닿는 소설이다.

까마득하다고 생각하지만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는 죽음, 늘 함께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이별해야 할 사람들,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끝나는 삶, 《리버보이》를 읽으면 생각의 폭이 한 뼘 넓어질 것이다.

이근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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