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AI 반응은 석기시대…
반 문명 반 기계는 오래된 좌편향
인터넷엔 지식 아닌 무지만 가득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이세돌의 패배에 충격받는 한국인을 보면 구석기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것 같다. “인간이 기계에 졌다!”는 식의 당혹감이라면 달리 해석할 여지도 없다. 심지어 적대감까지 드러내는 반응들은 미스터리다. 지식이 없고 견문이 협소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광우병 소동이 먹혀든 반(反)과학의 사회였던 것이다.
시중에 깔린 인공지능(AI) 관련 서적만 해도 산더미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나》(스티븐 핑커),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제리 포더), 《마음의 미래》(가쿠 미치오) 등 철학 명저들도 포함된다. 이들은 우리에게 기술사회의 미래에 대해 이미 충분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학생 39%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무식한 사회다.
기술 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좌익적 편향성이 그만큼 깊었다는 증좌이기도 할 것이다. 문명적 방법론을 배척하는 것은 뿌리 깊은 좌익 경향성이다. 데카르트의 ‘이성(理性)’은 소위 도구적 이성으로 폄하되고 ‘기술’은 곧장 지배적 기술로 왜곡되는 그런 세계관이다. 바보들의 일부는 이를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서대문을 달리는 전차를 악마라고 생각하거나, 라디오를 처음 본 사람들이 그 안에 많은 난쟁이들이 들어 있다며 놀라 자빠지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후진성이다.
실제로 ‘000 인문학 강좌’ 따위는 장자(莊子)의 자연주의 사상을 가르치면서 굳이 우물물을 퍼올리는 기계를 쓰지 않던 옛 노인의 에피소드를 장황하게 소개한 뒤에 갑자기 자본주의와 기계 문명을 맹렬히 비판하는 웃기는 결론으로 치닫고 있다. 효율을 중시하면 인간 본성을 잊는다는 익숙한 주장 말이다. 물론 이런 강좌일수록 기계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실업률이 높다는 등의 무식한 거짓말까지 끼워 판다. 이런 강좌들이 꽤 그럴듯한 기업체 강의실까지 점령한 상태다. 반(反)지식이 횡행하다보니 알파고를 놓고 허깨비 소동까지 벌이는 것이다. 구글은 한국인의 이런 싸구려 감성까지 흥행 전략에 포함시켰는지 모르겠다.
마르크스는 “중앙 자동기계로부터 전달되는 기계 시스템은 기계제 생산시스템의 가장 발전된 형태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기계괴물을 만난다. 이 괴물의 악마적 힘은 (중략) 혼돈 속에서 나타난다”고 말한 바도 있다(홍성욱 《1960년대의 인간과 기계》에서 재인용). 이런 사고는 세계는 악마적으로 타락한 끝에 기어이 종말을 맞는다는 사이비 종말론의 논리구조와 정확하게 같다. 당연히 이런 세계관은 어리석은 자들을, 원시 자연상태가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이며 조화롭다는 지어낸 망상으로 몰아넣는다.
반복되는 굶주림과 찰거머리 같은 질병과 귀족들의 착취와 절대적 가난과 짐승 같은 삶이 어떻게 극복돼 서서히 문명과 문명인의 지위가 열렸는지에 대해서 이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물론 이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는 유아적 역사관이다. 신화가 제거되고서야 객관을 다루는 자연철학이 등장했고, 자연철학이 극복되고서야 소크라테스의 윤리학이 등장한다는 학문 발생의 계통학조차 알지 못하는 가짜 인문학들이다.
남시베리아 초원지대의 어떤 민족이 처음 구리흙을 녹이고, 끓는 쇳물을 만들고, 주물에 부어 방패와 칼을 갖추고, 투구까지 쓰고 나타났을 때 벌거벗은 채 돌멩이만 들고 다녔던 인간들이 가졌을 공포감을 상상해 보게 된다. 또 그들이 처음으로 괭이와 호미와 삽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비로소 굶주림에서 벗어났다는 사실도 회고해 보게 된다. 바로 그 격차의 한쪽 극단 즉, 전(前)과학 사회의 반응을 지금 한국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네이버와 다음 등 한국의 인터넷에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헛소리와 거짓말과 풍문과 음모론과 싸구려 정치만 흐르고 있다. 소위 인간과 기계의 세기적 대결엔 한국 기업도 없다. 부드러운 땅에 쇠 삽을 박아넣는 순간은 처녀지의 상처라 하겠지만 인간은 그것을 통해 굶주림에서 해방된다. 기계여. 너 나약한 인간의 위대함이여!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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