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유리 기자 ]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싸움을 하지 않도록 사전 계약을 했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두 번째 대결 후 열린 기자간담회. 현장에선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졌다. 한 외신기자가 중국에서 돌고 있는 '알파고 음모론'을 제기한 것. 이 9단은 황당한 듯 웃어넘겼지만, 알파고가 던진 충격의 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얘기였다.
◆ 알파고 둘러싼 舌戰…승부조작 루머까지 등장 알파고와의 승부를 둘러싸고 설전(舌戰)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 최고수 이 9단이 충격의 2연패를 당하면서 대국에 대한 루머까지 나왔다. AI에 대한 반응이 놀라움을 넘어 공포로 번지는 모습이다.
전날 중국 텐센트스포츠의 한 기자는 "중국에서도 이번 대국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며 "이 9단이 자기 실력을 100% 발휘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음모론을 전한 외신기자는 자신의 스마트폰까지 보여주며 "중국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실제로 돌고 있는 소문"이라고 밝혔다. 이 9단이 승부수로 잘 활용하는 패싸움에 임하지 않도록 사전 약속이 돼 있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는 것.
사실과 다른 루머를 넘어 대국에 대한 뒷말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한 정보기술(IT) 전문 변호사가 게임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면서 논란을 키웠다. 법무법인 한얼의 전석진 변호사가 지난달 9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번 대국을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평가하면서다.
전 변호사는 알파고가 바둑의 세 가지 규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훈수를 두지 않고 ▲1대 1로 대국에 임하며 ▲시간 제한을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는 "광케이블로 인터넷에 연결된 알파고가 무제한의 훈수꾼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사실상 무한정의 시간을 갖게 된다"며 "이 9단이 둔 수를 실시간으로 학습한 수많은 알파고가 동원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낯선 기술에 대한 공포가 만든 현상…AI 공론화 필요"전문가들은 알파고를 둘러싼 논란이 AI에 대한 '낯섦'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AI 발전 속도가 공론화 속도를 앞서면서 기술에 대한 공포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과학자이자 아마추어 1단인 맹성렬 우석대 교수(전기전자공학과)는 "음모론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면서 "AI 기술이 물결처럼 거세게 오면서 전 세계가 놀란 분위기"라고 풀이했다.
학계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맹 교수는 "학계에서도 알파고의 실력에 놀라고 있다"며 "기술이 무한대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 수준도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결국 현실로 성큼 다가온 AI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연한 공포를 넘어 기술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KAIST 전산학부 명예교수)은 "미래는 이미 현재에 와 있었다"면서 "막연한 우려보다는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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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리 한경닷컴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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