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수지 증권부 기자 suji@hankyung.com
[ 나수지 기자 ] “한국 기업으로 첫 홍콩 증시 상장을 꿈꿨는데…. 홍콩거래소가 상장기업 유치에만 열을 올리면서 정작 사후관리는 전혀 안 해주더군요. 정말 실망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손창욱 미투온 대표의 목소리에선 홍콩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묻어났다. 게임사인 미투온은 지난 1월 홍콩 증시 상장을 포기하고 국내 코스닥시장 상장으로 계획을 바꿨다. 홍콩거래소의 무성의, 소통 부족이 문제였다.
당초 홍콩거래소는 미투온의 상장을 유도하기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상장 유치부서 담당자가 세 차례나 미투온을 방문하기도 했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미투온이 홍콩에 상장하면 후강퉁(상하이·홍콩 증시 간 교차매매) 도입 이후 중국에서 규제를 덜 받을 수 있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하지만 막상 상장을 결정하자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해 6월에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접수했지만 홍콩거래소는 두 달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8월이 돼서야 “한국 기업 상장 시 자국 주주 보호 문제가 있으니 주식예탁증서(DR)를 통해 간접 상장하든지 홍콩과 법체계가 비슷한 버뮤다나 케이맨제도에 지주회사를 설립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 상장 문제를 협의할 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다.
미투온이 거부하자 홍콩거래소는 상장 절차를 6개월이나 지연시켰다. 그 사이 한국에선 미투온의 경쟁사인 더블유게임즈가 코스닥에 상장했다. 결국 한국으로 발길을 돌린 미투온은 지난 1년간 상장 준비에 들인 돈만 날린 셈이 됐다. 돈도 돈이지만 상장 후 투자 확대, 해외 진출 등의 경영계획을 원하는 시기에 실행하지 못하는 것이 더 속상하다고 손 대표는 토로했다.
홍콩거래소의 이 같은 행태는 최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외국 기업 상장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국거래소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섣불리 양적 성과에 골몰하다간 한국 시장에 대한 이미지만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 첫째도, 둘째도 신뢰다. 꾸준한 소통과 함께 철저한 사후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당분간 홍콩거래소는 한국 기업을 유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미투온 사례가 국내외 상장을 준비하는 대부분 기업들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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