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박현정 전 대표 인권유린 의혹은 직원들 조작극"
시향 직원 10명 검찰 송치
"정명훈 부인 구씨도 깊숙이 개입…600여통 문자 통해 지시 정황"
구씨 "허위사실 유포 지시 안해"
서울시향 "수사결과 유감"…사태 후 후원금 반토막
[ 윤희은/김보영 기자 ]
2014년 12월 박현정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직원들에게 막말과 성추행을 했다는 시향 직원들의 의혹 제기는 모두 사실무근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향 직원들의 의혹 제기 과정에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부인 구모씨(68)가 개입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3일 이 같은 내용의 박 전 대표 명예훼손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의혹을 제기한 서울시향 직원 10명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 의견을 첨부해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일방적으로 박 전 대표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박 전 대표가 수세에 몰렸던 서울시향 사태는 1년2개월 만에 상황이 급반전됐다.
◆“직원들 주장 근거 없어”
경찰은 성추행과 인사 전횡, 폭언 등 박 전 대표에 대한 모든 의혹을 허위사실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직원들 사이에 진술이 엇갈리고 폭언 등을 들었다는 일시와 장소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사실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사 전횡 의혹에 대해서도 “인사담당자의 과실이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아울러 경찰은 정명훈 전 감독의 부인 구씨가 2014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정 전 감독 비서인 백모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600여통을 공개했다. 대부분 박 전 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의한 내용으로 경찰 관계자는 “구씨가 백씨에게 직원들의 투서를 유포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구씨에게 네 차례 출석요구를 보냈지만 구씨는 해외에 머물며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구씨의 출석이 꼭 필요하다”며 구씨를 압박했다.
서울시향 직원 10명은 2014년 12월 박 전 대표가 폭언을 했다는 등 문제를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논란이 되면서 박 전 대표는 같은 달 29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경찰은 박 전 대표의 성추행 등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한 데 이어 11월에는 박 전 대표를 고소한 직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태의 배후에 구씨가 있다는 의혹이 퍼지면서 정 전 예술감독은 지난해 말 10년 만에 서울시향 예술감독직을 내려놨다.
◆“박 전 대표는 개혁의 희생양”
박 전 대표는 서울시향에서 물러날 때부터 “나태한 문화에 익숙한 분들이 조직을 시스템화하려는 내 목표와 갈등을 일으켰다”며 “배후에 정 전 감독이 있다”고 말했다. 2013년 2월 서울시향 대표에 취임한 박 전 대표는 여러 분야에 걸쳐 고강도 개혁을 추진했다. 취임 당시 과거 8년간 서울시향에서 연주한 곡목 리스트도 정리돼 있지 않을 정도로 조직의 비효율이 심각했고, 기초적인 문서작업을 못하는 직원도 많았다는 게 박 전 대표의 설명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삼성화재에서 손해보험업계 최초로 여성 임원을 지냈을 정도로 유능하다고 입소문이 났다”며 “기업에서 통하는 방식으로 강성 개혁을 하려다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서울시향의 기업 후원금은 반토막 났다. 2014년 22억7000만원에 달하던 서울시향 기업 후원금은 지난해 14억5000만원으로 약 37% 줄었다. 올해 기업들과 협의 중인 후원금은 한 자릿수 단위로 낮아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와 관련해 구씨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직원들의 인권침해 구제를 도왔을 뿐 허위사실 유포를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구씨는 자신을 허위사실 유포 지시자로 지목하고 관련 내용을 공표한 경찰에 지난달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시향 측도 “서울시 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인권침해 사실이 인정됐다”며 “인사 전횡에 대해서도 박 전 대표가 서울시에서 주의 조치를 받은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윤희은/김보영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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