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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퍼스트 무버'가 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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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 극명한 차이
훈수꾼 많은 사회의 역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세계 최대 가전쇼(CES)에 이어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도 어김없이 들려오는 것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얘기다. 특히 MWC에서 LG전자가 새 전략폰으로, 삼성전자가 모바일 가상현실(VR) 기기로 주목받자, 기업이 살 길은 퍼스트 무버라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적자(適者)’가 아니라 ‘속자(速者)’가 생존한다는 말까지 회자된다.

멜리사 실링 미국 뉴욕대 교수는 《기술경영과 혁신전략》에서 퍼스트 무버 등 시장 진입 타이밍을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퍼스트 무버 훈수꾼은 주로 퍼스트 무버의 이점에 주목한다. 가령 브랜드 로열티, 기술적 리더십, 소비자가 한 번 익숙해지면 쉽게 바꾸지 못하는 전환비용 등에 따른 독점 이익 같은 것이다. 특히 플랫폼 등 수익체증 특성을 가진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지배적 디자인으로 등극하면 그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고도 한다.

천당과 지옥, 극명한 차이

그러나 이것은 퍼스트 무버로 성공할 때나 가능하다. 퍼스트 무버 훈수꾼은 정작 실패 시 도산도 각오해야 하는 위험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은 기본이다. 새로운 부품이나 유통채널 개발도 퍼스트 무버의 몫이기 일쑤다. 수많은 보완재와 보안기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발목이 잡힌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 수요가 불확실하다는 것도 큰 변수다.

그렇다면 퍼스트 무버의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어떤 사례연구는 퍼스트 무버 실패율이 50%에 육박하고, 시장 점유율도 10%에 불과하다고 보고한다. 보기에 따라선 생각보다 좋다고 해석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아는 퍼스트 무버가 진짜 퍼스트 무버냐는 것이다. 진짜 퍼스트 무버는 이미 다 사라지고 시장에서 이긴 쪽을 퍼스트 무버로 잘못 아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퍼스트 무버는 다 이익을 본다는 오해는 이에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훈수꾼 많은 사회의 역설

어쨌든 퍼스트 무버로 갈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아니면 그냥 팔로어로 갈지는 기업이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전략적 옵션이 많은 사회가 혁신에도 그만큼 유리한 것은 틀림없다. 아무도 퍼스트 무버로 나서려 하지 않으면 성공한 퍼스트 무버도 나올 수 없을 건 당연하다. 더구나 수많은 퍼스트 무버가 혁신의 불확실성을 하나씩 걷어내며 장렬히 전사한다. 그 사회적 가치는 엄청나다. 여기서 등장하는 게 퍼스트 무버를 격려하는 사회적 역할론이다. 기꺼이 퍼스트 무버를 자청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 한국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나.

어쩌면 한국은 흥미로운 연구 대상일지 모른다. 기업더러 퍼스트 무버로 가라는 훈수꾼이 이린?넘치는 나라도 없다. 대통령도, 장관도, 심지어 정치인까지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시스템은 정반대다. 퍼스트 무버가 운까지 따라줘 성공하면 박수를 치겠지만 실패하는 순간 눈초리가 싸늘하게 변할 건 짐작하는 대로다.

해외에 선례가 없다고 말하는 퍼스트 무버는 연구시스템, 교육시스템, 금융시스템 등에서도 사절이다. 규제시스템도 퍼스트 무버는 희생양이 되기 딱 좋을 뿐, 철저히 추종자에게 유리한 구조다. 공공시장도 퍼스트 무버를 외면하긴 마찬가지다. 어디를 봐도 퍼스트 무버가 비빌 언덕이 없다. 이래 놓고 기업더러 퍼스트 무버로 가라고?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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