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중증상해 등 피해자 신청만으로 절차 시작
반발하는 의료계 "당사자 자율해결 원칙 훼손"
[ 고은이 기자 ] 의료사고로 숨지거나 중증 상해를 입은 당사자 및 유족이 의료분쟁 조정을 원하면 의사나 병원의 동의가 없어도 조정 절차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7일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일명 신해철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의 골자는 의료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나 가족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하면 피신청인(의사·병원)의 동의 여부를 묻지 않고 분쟁 조정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자동 개시)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지금은 피해자가 조정 신청을 해도 병원이나 의사가 조정을 거부하면 조정 절차가 시작되지 않는다.
지난해 조정중재원에 1311건의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왔지만 이 중 750건(56%)은 병원이나 의사의 불응으로 조정 절차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2014년 가수 신해철 씨가 장 협착 수술을 받고 갑작스럽게 사망한 이후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조정 절차를 자동 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회 복지위는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의료사고 피해 환자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의료분쟁 조정 신청이 들어오면 조정 절차를 자동 개시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조정 신청을 남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감안해 자동 개시 대상을 사망이나 중상해 피해자에만 일단 한정하기로 했다. 중증 상해의 정의 및 범위는 추후 시행령으로 정하게 된다.
또 조정 신청 내용이 명백한 거짓이거나 조정하기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면 조정중재원에서 종결할 수 있도록 했다. 조정이 시작된 이후에도 의사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 이의가 합당하다고 판단되면 조정 절차는 중단된다.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유명무실한 현행 조정제도 때문에 분쟁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아 의료소송으로 이어지고 사회적 비용이 커지는 사례가 많았다”며 “법 개정안이 발효되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입장 자료를 내고 “당사자 간 자율적인 해결이라는 조정제도 개설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의료 분쟁을 조장해 현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책임을 우려한 의사들이 방어적으로 진료하다 보면 오히려 환자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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