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각국 정부, 특단 조치 검토
사람 물지 않는 수컷 모기 활용
성체로 자라기 전 자연사 등 유전자 조작한 퇴치법 논의
일부선 생태계 교란 지적
"1억년 진화해온 모기 없애면 물고기·곤충 수백종 사라질 수도"
[ 박근태 기자 ] 역사상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인 동물은 모기다. 최근 중남미와 태평양 일대 국가를 강타한 지카 바이러스를 비롯해 말라리아, 뎅기열, 일본뇌염, 황열병,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등 인류를 위협하는 익숙한 감염병이 모두 모기에 의해 감염된다. 고대 지중해의 지배자 로마인들은 팔라티노 언덕에 열병의 신을 기리는 신전을 세웠지만 말라리아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영국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올리버 크롬웰,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가마와 아프리카를 탐험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의 탐험 정신을 꺾은 것도 모기였다. 지금도 해마다 7억명에 가까운 사람이 모기가 옮기는 병에 걸리고 이 중 100만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인류 최대의 적 모기를 쓴 앤드루 스필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은 “지구상의 어떤 곤충도 인간의 역사에 이토록 직접적으로 개입해 치명타를 가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특단 조치로 GM 모기 활용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백신 개발 외에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바이러스 전파를 더 원천적으로 막을 방안으로 자멸 유전자를 가진 유전자 조작(GM) 모기를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브라질 정부도 오는 4월 상파울루주 일대에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창업한 옥시텍이 개발한 GM 수컷 모기를 야생에 푸는 계획을 허가했다.
말라리아를 막기 위해 개발된 이 기술은 모기 유전자를 조작해 알에서 깨어난 장구벌레(애벌레)가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죽게 하는 방식이다. 모기 서식지에 유전자를 변형시킨 모기 수컷을 대량으로 풀어놓으면 이들과 짝짓기한 암컷 모기는 다 자라지 못한 채 죽게 될 운명의 후손을 낳게 된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이런 실험을 한 결과 유충이 약 82% 줄었다.
미국 UC어바인대 연구진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특정 유전자가 후손에 전달될 확률을 높이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수컷 모기는 사람을 물지 않고 암컷만 사람을 문다. 연구진은 성(性)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편집해 수컷 모기만 태어나도록 하면 결국에는 사람을 무는 암컷 모기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질병을 전파하는 모기가 사라지면 인구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먹이든 꽃가루 매개든 모기가 사라진 자리는 다른 생물이 빨리 채워나가면서 생태계에 남긴 상처도 금방 아물 것으로 내다봤다.
카를로스 브리솔라 마르콘데스 브라질 산타카타리나대 교수는 “모기가 없는 세상은 우리에게 더 안전하다”며 “사람의 피를 빨고 병을 옮기는 모기 제거는 인류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기 사라지면 생태계 균형 깨질 수도
반대도 만만치 않다. 지터와디 머피 미 육군연구소 연구원은 201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모기는 약 1억년 넘게 지구에 살아오면서 많은 종과 함께 진화해왔다”며 “모기를 박멸하면 포식자 먹이가 사라지거나 꽃가루의 매개자가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마다 러시아 동토 지역은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수많은 벌레가 알을 낳고 번식하기 시작한다. 이들 벌레는 여름철 이 지역에 둥지를 트는 철새들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브루스 해리슨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정부 환경천연자원국 연구원은 “모기가 박멸되면 툰드라 지역을 찾는 철새 50% 이상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는 세계 수중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장구벌레를 먹고 사는 수백 종의 물고기와 곤충, 거미, 도롱뇽, 도마뱀과 개구리들도 식습관을 바꿔야 할 형편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유전자에 각인된 습성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고 적응에 실패한 포식자도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말라리아를 획기적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진 방충망 등 기존 방역 방식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을 권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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