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중국, 원전·고속철 쓸어담는데
한국은 집안서 SOC 수출 '발목'
정책 리더십부터 바로 세워야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요즘 일본의 핫이슈는 원전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연일 원전 관련 기사를 1면 톱에 올릴 정도니 말이다. 25일자 머리기사는 일본이 1조엔 규모의 영국 원전을 수주했다는 내용이었고 26일자는 후쿠이현 다카하마 원전이 재가동에 들어가 전기료를 내릴 수 있게 됐다는 기사다. 같은 원전 얘기지만 원전 수출과 자국 내 원전 재가동이 같은 내용일 리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만큼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단일 사안이다.
알다시피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제로(0) 정책’을 폈다. 54개 원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그런 일본 정부가 다시 원전을 가동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전력 부족이 산업은 물론 국민 생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원전을 화석연료 발전이 대체하면서 전기료만 다락같이 올랐다. 하지만 대안은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경제 회생이다. 일본은 이제 사회간접자본(SOC)을 수출하지 않고서는 성장이 쉽지 않은 산업 구조다. 그런데 제 나라에서조차 가동을 포기한 원전을 누가 사들이겠는가.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밀어붙였다. 대신 안전 규정을 강화했다. 다카하마 원전 재가동은 지난해 8월 가고시마현 센다이 원전에 이은 두 번째다. 다른 원전도 속속 재가동에 들어간다. 수출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첫 원전 수주다. 아베 신조 총리의 세일즈 외교에 가속이 붙었다. 인도 베트남 등지에서도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들은 신이 났다. 원청사는 물론이다. 건설 철강 부품 등 관련 업체도 덩달아 환호성이다.
한국은 어떤가. 이명박 정부 시절 UAE에서 4기의 원전을 수주한 뒤 6년 넘게 수주 제로다. 박근혜 대통령이 41개국을 다니며 경제 외교를 펼쳤지만 성과는 없다. 외교력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일본과 전혀 다른 국내 분위기가 세일즈 외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작년 초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스마트 원전’ 수출을 위한 MOU를 맺었다. 그러나 그 뒤 진전은 거의 없다. 사우디의 재정난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스마트 원전의 안전성을 검증할 시범발전소를 국내에 건설해야 하는데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센 원전 반대 탓이다. 제 나라 국민이 반대하는 원전을 어디에 팔겠는가.
기억해보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까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던 고리원전 1호기를 무턱대고 폐쇄한 나라다. 월성 1호기도 마찬가지다. 국제 수준을 넘어서는 안전테스트를 마쳤는데도 ‘계속 운전’을 결정하는 데 2년 반이 걸렸다. 밀양송전탑 시위에 막혀 전전긍긍하던 고리 3호기는 며칠 전 간신히 가동에 들어갔다. UAE에 첫 수출한 국산 원전 모델이다. 전원계획을 승인받은 지 10년 넘게 국내에서 가동해보지 못한 모델을 UAE는 물론 주변국이 믿어주겠는가.
과학은 없고 정치만 남은 원전 산업이다. 시민단체가 나서 법적 근거나 효력도 없는 원전 반대 주민투표를 해댄다. 잠잠한가 싶더니 총선을 앞두고 원전 예정지에 출사표를 던진 예비 후보들이 주민투표를 재추진하겠다며 표몰이에 나섰다. 이런 한심한 정치인들이 우리의 수준이다.
원전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 중국 프랑스가 수주전을 벌이고 있는 고속철 분야에서도 한국은 ‘왕따’다. 세계 각국은 전동차마다 엔진을 장착하는 동력분산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한국은 맨 앞과 맨 뒤 열차에만 동력원을 두는 동력집중식을 고집해왔다. 현대로템은 2012년 동력분산식 개발을 마치고 수없는 시운전을 거쳤는데도 정부는 안전성을 내세워 상용화를 미뤄왔다. 공무원들이 수출길을 막아온 셈이다. 일본과 중국의 경쟁사들은 공장 가동에 밤잠을 설친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일감이 없어 열흘 전부터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는 막무가내고, 정부의 정책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공무원들은 복지부동이고, 정치인은 포퓰리즘에 절어 있다. 대통령이 세일즈 외교에 나선다지만 어떻게 힘을 받을 수 있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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