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술 마실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주세(酒稅)의 목적이 무엇인지. 국민 건강인가, 세수 확보인가. 술로 인한 질병과 청소년 음주는 위험수위다. 술김에 저지르는 주폭(酒暴), 음주운전 사고는 또 어떤가. 작취미성(昨醉未醒)의 생산성 저하는 계산도 어렵다.
주세를 대폭 올려서라도 술 소비를 줄일 필요가 있다. 외부효과를 교정하는 죄악세(sin tax)로서 공감대도 있다. 국민 건강이 걱정돼 담뱃세를 단숨에 80%나 올린 정부가 아닌가. 그런데 유일호 부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주세 인상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새누리당도 펄쩍 뛴다. 음주의 직·간접 손실이 연간 20조원이 넘는데 괜찮다는 말인가.
한국 술 50년 하향평준화 주범
1909년 처음 도입된 주세는 100년 넘는 ‘세수 효자’였다. 국세 중 주세 비중이 6.5%(1965년)에 달한 적도 있다. 지금은 1.6%다. 담뱃세 인상으로 지난해 3조5608억원이 더 걷혔지만 소주값 인상(출고가 5.61%)에 따른 추가 세수는 1000억원도 안 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현행 주세법을 고집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우선 정치적 부담이 크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주세 인상을 추진했다 접었다. ‘값싼 서민주’를 건드릴 배짱이 없어서다. 더구나 세금을 걷기 편해 굳이 바꿀 필요를 못 느낀다. 정부는 1968년부터 알코올 도수(종량세)가 아니라 술값(종가세)에 주세를 매겼다. 출고가가 오르면 주세 수입도 덩달아 늘어난다. 주류업계와 국세청으로선 누이 좋고 매부 좋다. 대법원이 소주값 담합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도 국세청이 관여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혹자는 서민들이 시름을 달래는 값싼 ‘쐬주’가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것이다. 단돈 1달러로 취할 수 있는 술은 세계에서 소주뿐이다. 어디서나 살 수 있다. 한국인을 술고래로 만든 이유다. 하지만 가격이 싸도 품질이 허접스러우면 싼 게 아니다. 소득 3만달러인 나라에서 질 낮고(소주) 맛없고(맥주) 허름한 플라스틱통(막걸리)에 담긴 저급주만 넘쳐난다.
종량세 전환해 고급화 유도해야
이런 하향평준화의 주범이 바로 주세법이다. 주세율은 센 술(소주, 위스키)이나 약한 술(맥주)이나 72%로 같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세가 붙어 술값의 50% 이상이 세금이다. 게다가 출고가에 과세해 좋은 재료를 써도, 병을 고급화해도 세금이 붙고 가격이 뛴다. 오죽하면 전통주업체들이 면세되는 군납을 기웃거릴까 싶다.
하지만 소비자 입맛이 달라졌다. 다양한 수입맥주가 맥주시장을 잠식한 지 오래다. 위스키도 싱글몰트를 찾는다. 와인은 물론 사케와 일본 소주도 마니아가 두텁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수입 주류를 막을 수도 없다. 국산 술은 저급주, 외국 술은 고급주란 이분법이 고착화할 판이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종가세인 주세를 종량세로 바꾸 ?된다. 알코올 도수와 병에 담긴 알코올 양에 따라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이는 술 소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멕시코 터키 등을 제외한 선진국들이 다 종량세다. 다만 소주값이 오르는 문제가 생긴다. 이는 일본처럼 주종에 따라 차등세율을 적용하면 최소화할 수 있다. 대신 전통주의 다양한 시도와 고급화가 가능해진다.
한식 세계화에는 세계적인 한국 술도 필수다. 현행 주세법은 국민 건강도, 세수 효과도 없이 주류 고급화만 가로막고 있다. 이런 걸 고치는 게 진정한 규제개혁이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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