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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과 '쇼와 레트로'…유행을 넘어 주류 장르로 떠오른 복고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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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기자의 콘텐츠 Insight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달랜 쇼와시대 복고 문화콘텐츠

달콤한 옛추억 되살린 '응답하라1988' 인기몰이

가나초콜릿·바나나맛 우유 등 기업들 간접광고로 매출 늘려



[ 김보영 기자 ] 일본에 ‘쇼와(昭和) 레트로’라는 말이 있다. 쇼와시대(1926~1989) 중후반을 주제로 한 복고 마케팅을 뜻한다. 쇼와 레트로 상품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는 동안 장기간에 걸쳐 엄청나게 팔렸다. 영화·드라마 등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문화콘텐츠가 쏟아진 것은 물론 각 현의 주요 도시마다 당시를 추억하는 ‘쇼와박물관’이 생겼다. 도쿄 근교의 오우메(靑梅)는 마을 하나를 통째로 쇼와시대처럼 꾸몄다. 거리를 걷다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1961) 영화 간판이 보인다.

요즘 카페에 들어서면 시간 감각이 왜곡된다. 낯선 가락이 아니라 나온 지 20~30년 된 노래가 버젓이 울려 퍼져서다.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틀어 놓은 최신 가요는 1994년생 박보람이 부른 ‘혜화동(혹은 쌍문동)’이다. 동물원이 1988년 발매한 2집 음반의 마지막 곡이 원작이다. 어디서나 김광석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룰라나 터보의 곡도 자주 귀에 들어온다.

지난해 초 MBC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가 폭발적 인기를 끌기 전에도 ‘응답하라 1997’(2012년) ‘응답하라 1994’(2013년)가 있었다. 지난해 말 방영을 시작한 ‘응답하라 1988(응팔)’로 복고는 일시적 문화 유행이 아니라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아 가는 것처럼 보인다.

드라마 속 옛것은 더 이상 구질구질한 것, 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버스회수권, 손으로 돌려서 거는 다이얼식 전화 등은 고도 성장기인 동시에 인정도 살아 있었던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소중한’ 추억의 물건이다. 당시 주택가에 살았던 학생들에게 아파트는 선망의 공간이었다. ‘응팔’에서 골목길이 워낙 환상적으로 그려진 덕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주택가가 당시에도 사랑받았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응팔’의 복고 코드를 활용한 마케팅이 활발하다. 드라마 속 혜리(덕선 역)의 꿈속에 당시 하이틴 스타였던 이미연의 가나초콜릿 CF가 나온 것이 계기가 돼 롯데제과는 혜리를 가나초콜릿의 새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응팔’ 속에 바나나맛우유 간접광고(PPL)를 한 빙그레의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10% 증가해 ‘1988 에디션’까지 출시했다.

당시 어두웠던 시대상이 ‘응팔’에서 가볍게 다뤄졌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노리는 것이 설탕 같은 레트로 마케팅이라면 다루지 않는 쪽이 영리한 선택이다. 어차피 소비자가 즐기고 싶은 것은 ‘가짜 사건(pseudo event)’이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언급한 ‘가짜 사건’은 실제보다 더 주목받는 조작된 사건, 일종의 이미지를 일컫는다. ‘흙수저’와 ‘헬조선’ 얘기가 오가는 현실을 외면하고픈 소비 트렌드를 읽어 과거를 소환했다면, 달콤함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다.

버블경제가 붕괴된 뒤 일본은 2002~2007년의 약 6년에 걸쳐 최장기간의 회복기에 들어섰지만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릎이 꺾였다. 이제 일본에는 쇼와시대에 유행하던 그림체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쇼와 레트로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존재한다. ‘쇼와 레트로’처럼 국내에 ‘8090 레트로’ 장르가 본격적으로 신설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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