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들어주는 행사' 재능 기부 권영호·박경일·전명진·황영철 사진가
메이크어위시재단 사진전
'환자가 우울하다'는 생각은 편견
연출없는 몰래 촬영 더 아름다워
[ 이미아 기자 ]
흰색 유니폼, 하늘색 넥타이로 하나된 네 명의 합창단원 여학생, 온몸의 근육이 굳은 채 휠체어에 누워 있지만 제주 바다 앞에서 환히 미소짓고 있는 흑백사진 속 형제, 밝고 하얀 구름이 흐르는 하늘 아래서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남학생, 용인 에버랜드에서 어여쁜 공주가 돼 퍼레이드에 참가한 어린 소녀…. 이 사진들은 각각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품고 있다.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위시데이(Wish Day)’ 행사로 잘 알려진 자선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은 인천국제공항공사 후원으로 지난 23일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마이 위시(My Wish)’ 사진전을 열었다.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이 사진전에선 국내 유명 사진가인 권영호 씨와 박경일 씨, 전명진 씨, 황영철 씨가 촬영한 위시데이 행사 사진이 전시된다. 재단 측에 재능기부한 사진가 네 명을 지난 23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권영호 스튜디오EO 대 Ⅴ?‘그녀를 믿지 마세요’ ‘바람의 파이터’ 등 다수의 영화 포스터와 광고 사진을 찍어 왔다. 9년 전 처음으로 메이크어위시재단과 인연을 맺은 그는 “위시데이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고 사진은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결정적 순간을 촬영하기 위해 행사 내내 아이만을 주시한다”고 전했다. “마치 ‘몰래카메라’를 찍는 심정으로 촬영합니다. 의도적으로 연출하면 행사를 망칠 우려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한 건 말이죠, 위시데이 행사 촬영 때마다 ‘이야기가 담긴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는 겁니다.”
스튜디오B2의 대표인 박경일 씨는 은행원 출신의 패션사진가로 잘 알려져 있다. 7년째 메이크어위시재단에 봉사 중인 그는 “패션사진을 작업할 땐 내공 강한 모델들에게 눌리지 않으려 기가 세질 수밖에 없는데 위시데이 행사 사진을 찍을 땐 정반대가 돼야 한다”며 “주인공 옆에 조용히 머무르며 관찰자 시점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시데이 행사 촬영사진은 대부분 컬러로 인화하지만,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사진은 흑백이었다. “컬러로 인화하니 너무 현실이 처절히 드러나서 ‘행복한 순간을 나타낸다’는 위시데이의 취지가 가려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흑백으로 바꿨죠.”
KBS 간판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사진을 전담했던 전명진 씨는 5년 전부터 위시데이 촬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아이들을 촬영하는 게 생각보다 정말 힘들다”며 “사진 찍기 전 아이와 어울려 놀다가 친해졌다 싶을 때 비로소 카메라를 꺼내 榮?rdquo;고 말했다.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을 땐 사진 그 자체가 목표지만, 위시데이 행사에선 사진은 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보조적 역할을 할 뿐입니다. 제가 잘하는 일을 통해 아이의 행복한 순간을 만드는 팀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좋습니다.”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비롯한 많은 드라마의 포스터와 사진을 찍었던 황영철 구디스튜디오 대표는 올해로 8년째 위시데이 행사를 촬영해 오고 있다. 그는 “난치병을 앓는 아이들 입장에선 위시데이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며 “그날을 즐겁게 보내는 순간의 모습을 남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표정을 잡기 전에 제 스스로의 마음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위시데이는 행복한 날이니까 저 역시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죠. 화사함을 살리려 사진 촬영과 인화 시 파스텔톤을 선호합니다.”
네 명의 사진가가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었다. “‘환자가 우울하다’는 건 편견입니다. 사진을 찍었던 아이들이 완치된 뒤 다시 찾아올 때 아주 큰 보람을 느낍니다. 봉사를 통해서 ‘나를 내려놓는 법’을 배웁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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