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포인트, 현금으로 인출…하나금융 '역발상' 통했다
금융권 첫 통합멤버십 위력
'플랫폼 전쟁'서 밀린 은행, '현금 포인트' 강점 살려 역공
[ 박한신 기자 ] 하나금융그룹의 멤버십 포인트 제도인 하나멤버스가 출시 두 달 만에 가입자 150만명을 넘어서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통신이나 대형마트 등 생활필수 업종의 멤버십이 아닌 점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증가 속도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뽑아 쓸 수 있도록 한 발상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가입자 수 500만명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포인트를 현금으로 인출
최근 가입자 수 150만명을 돌파한 하나멤버스는 하나금융그룹이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멤버십 포인트 제도다. 사용 실적에 따라 혜택을 제공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통신사의 멤버십 카드나 유통사의 포인트 제도와 비슷하다.
그러나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현금성’이다. 지금까지 나온 멤버십 포인트는 전용 쇼핑몰이나 제한된 가맹점에서만 이용할 수 있었다. 하나멤버스의 포인트인 하나머니는 그러나 현금과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다. 은행 자동화기기(ATM)에서 하나머니를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는 게 대표적이다. 소비자가 ATM에서 10만 하나머니를 인출하면 현금 10만원이 나오는 식이다. 물론 하나머니를 은행 계좌로 입금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국 모든 상점에서 하나머니로 결제할 수도 있다. 하나카드의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하나카드로 결제하면 하나멤버스 앱(응용프로그램)이 소비자의 휴대폰으로 ‘하나머니로 결제하겠느냐’는 푸시 알림을 보낸다. 가입자가 ‘예’를 누르면 하나머니를 차감한 나머지 금액만 청구된다. 지금은 3만원 이상 결제할 때 결제금액의 20%까지만 하나머니로 지급할 수 있다. 하나금융은 조만간 이 같은 결제 한도를 없앨 예정이다.
다른 브랜드의 포인트를 하나머니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하나멤버스 포인트의 경쟁력이다. 지금은 OK캐쉬백(SK플래닛) 포인트와 SSG머니(신세계)를 자유롭게 하나머니로 변환할 수 있다. 하나금융은 CJ ONE 포인트와 아모레퍼시픽의 뷰티포인트를 하나머니로 전환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보험 가입자에게 하나머니를 포인트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환 대상 포인트의 종류가 늘어나면 다른 업종의 소비자가 조금씩 하나멤버스로 유입될 것으로 하나금융은 기대하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하나머니는 쓰지 않으면 소멸하는 다른 포인트와 달리 현금처럼 찾아서 쓸 수 있도록 한 첫 사례”라며 “가입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간편결제 기능이 커지면 삼성페이 등과 경쟁하는 결제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태 회장 “고객 늘려야 생존”
자산 기준 국내 최대 은행이면서 고객 수에서는 4위에 머물러 있는 KEB하나은행이 하나멤버스를 통해 고객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하나멤버스는 ‘어떻게 하면 KEB하나은행의 고객 수를 늘릴 수 있을까’ 하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장 시절부터 “고객 기반을 늘리지 않으면 하나은행은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활동고객 수가 적어 저원가성 예금 비중이 낮아지고, 이 때문에 조달금리와 대출금리가 높아져 고객이 이탈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KEB하나은행의 활동고객 수(2013년 기준)는 약 540만명으로 국민은행(1250만명)의 절반도 안 된다. 신한은행(820만명) 우리은행(770만명)과도 격차가 크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하나멤버스 가입자가 곧바로 하나금융 고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금융과의 거래를 통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고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나멤버스에 가입하면 0.3%포인트 우대금리를 주는 하나멤버스 적금은 출시 한 달여 만에 약 20만명이 가입했고, 하나멤버스 포인트를 쌓기 위한 주요 채널인 ‘1Q카드’는 두 달 만에 33만장이 발급됐다. 김 회장은 “하나멤버스는 아이디어 구상에만 1년 반, 총 개발기간은 2년 이상이 걸린 금융권 최초의 혁신 플랫폼”이라며 “핀테크(금융+기술) 발전에 발맞춰 종합 금융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폼 싸움 밀린 은행권 ‘반격’
하나멤버스는 비금융 사업자들과의 플랫폼 경쟁에서 밀린 금융권이 내놓은 ‘반전 카드’로 볼 수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은행의 플랫폼은 대부분 지점을 의미했다. 가만히 앉아서 지점으로 몰려드는 소비자를 맞이하면 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급격히 지점을 떠나 모바일로 이동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금융이 융합하면서 시장에 대한 은행의 영향력도 약해졌다.
은행은 떠난 고객을 다시 모을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했다. 한준성 하나금융 미래혁신총괄 전무는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내기 위해 금융회사들은 수년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며 “플랫폼 전쟁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하나금융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하나멤버스”라고 말했다. 금융회사의 강점을 살려 ‘현금’이라는 요소를 담았고, 이 같은 강점이 소비자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얘기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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