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Practice - 컬럼비아
모자가게 운영하던 유대계 출신 CEO 남편 죽자 모자가 경영맡아
초기에 적자내며 파산위기 몰려…직접 광고에 등장 '터프맘' 각인
우주복 재킷 등 첨단소재로 승부…전 세계서 아웃도어 돌풍 일으켜
[ 박해영 기자 ]
미국의 아웃도어용품 기업인 컬럼비아스포츠웨어는 지난해 21억달러(약 2조43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 16억달러 수준에서 정체돼 있던 매출이 껑충 뛴 것이다. 중국에 세운 합작사가 가세하면서 아시아 지역의 판매가 70% 급증한 덕분이었다. 미국(26%) 캐나다(34%) 등 북미시장 매출도 대폭 늘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고기능성 제품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 영업이익은 2013년 대비 45% 증가했다.
컬럼비아의 실적 호조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말 3분기 성적표를 내놓은 팀 보일 최고경영자(CEO·66)는 올해 주당 이익 전망치를 기존의 2.25~2.35달러에서 2.32~2.37달러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매출도 작년보다 약 10% 늘어난 23억달러로 전망했다. 고가 제품이 잘 팔린 덕택에 올해도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는 최근호에서 “2000년대 초반 경쟁업체들에 밀리면서 고전했던 컬럼비아가 기술혁신을 앞세워 완전히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유대계 독일 이민자의 모자가게로 출발
컬럼비아는 1938년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모자가게 ‘컬럼비아 햇 컴퍼니(Columbia Hat Company)’로 출발했다. 워싱턴주와 오리건주 사이를 흐르는 컬럼비아강에서 이름을 땄다. 포틀랜드에는 나이키 본사도 있어서 미국 아웃도어 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컬럼비아 모자가게는 팀 보일 CEO의 외할아버지 폴 람프롬이 열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셔츠 공장을 운영하던 람프롬은 1937년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이민하기로 결심했다. 셔츠사업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유대인인 그는 인근에서 가장 큰 공장을 운영하며 셔츠를 팔아 상당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집 담벼락에 ‘여기 유대인이 산다’는 낙서가 쓰인 것을 발견하고 독일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람프롬은 독일 나치 정권을 뒤로 하고 13세 딸 거트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팀 보일 CEO의 어머니인 거트는 컬럼비아 역사 그 자체라고 할 만하다. 1964년 장인으로부터 모자가게를 물려받은 거트의 남편 닐 보일은 사냥, 낚시, 스키 등 아웃도어용품으로 제품을 확장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닐이 직접 디자인한 낚시용 조끼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컬럼비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주머니를 달아 편의성을 높인 컬럼비아의 제품은 낚시 조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1970년 닐이 47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시련이 닥쳤다. 가정주부였던 거트는 고민 끝에 장남 팀과 함께 회사 경영을 대신 맡았다. 오리건주립대에 다니던 팀은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학교까지 중퇴했다.
‘강한 엄마’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각인
거트와 팀 모자(母子)가 구원등판한 컬럼비아호는 휘청댔다. 적자를 내면서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거트는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아웃도어 의류에 초점을 맞추고 회사를 재정비했다. 1975년 의류업체로는 처음으로 기능성 소재인 고어텍스를 사용한 파카를 선보이면서 컬럼비아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거트는 1984년 아들 팀과 광고에 직접 등장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트는 팔뚝에 문신을 새기고 ‘터프 맘(tough mom·강한 엄마)’ 이미지를 내세웠다. 아들을 오리건의 겨울 산에 보내 제품 테스트를 시키는 코믹한 장면은 컬럼비아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컬럼비아는 이때부터 거친 자연환경에서 엄격한 품질 검사를 거쳤다는 뜻의 ‘테스티드 터프(tested tough)’ 라벨을 모든 제품에 달았다. 이 문구는 컬럼비아의 상징이 됐다.
특허 200여건 쏟아내며 기술혁신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컬럼비아는 팀 보일 CEO가 2007년 과학자 출신인 우디 블랙포드를 신기술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하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블랙포드는 포틀랜드 본사에 세운 ‘퍼포먼스 이노베이션 팀(PIT)’을 이끌면서 컬럼비아의 기술혁신을 이끌었다. 은색 점이 새겨진 안감으로 보온력을 극대화한 ‘옴니 히트’, 땀을 빠르게 흡수해 여름철 야외활동을 돕는 ‘옴니 프리즈 제로’, 통기성이 좋으면서 습기를 막아주는 기능이 탁월한 ‘아웃드라이’ 등 컬럼비아가 자랑하는 첨단 기술이 모두 이 팀의 작품이다.
블랙포드 부사장은 “소비자들이 컬럼비아를 기술혁신의 선두주자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컬럼비아 브랜드의 힘을 키우는 것은 기술력”이라고 강조한다. PIT는 우주복 재킷, 쿨링 셔츠 등 각종 아웃도어 소재에 사용되는 특허 200여건을 쏟아내며 컬럼비아의 기술혁신을 주도했다.
컬럼비아의 마케팅담당 임원인 블레인 페린은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컬럼비아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기술’과 ‘혁신’을 중시한다는 반응이 최근 4년 새 두 배가량 늘었다”며 “브랜드가 핵심가치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신기술을 추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91세인 거트는 회장 직책을 맡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컬럼비아는 올해 하반기 ‘강한 엄마’ 거트를 다시 내세운 광고를 시작했다. 함박눈이 내리는 스키장 리프트에 앉은 직원 두 명이 컬럼비아 제품을 착용하고 추운 날씨를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 실험하고 있다. 어디선가 나타난 거트. “이제 됐다”는 말을 기대했던 직원들에게 거트는 조용히 피자 한 판을 건넨다. ‘테스티드 터프’. 거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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