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올 들어 변경 공시 266건…지난해보다 36% 늘어
행남자기·엔에스브이 등은 창업자가 경영권 매각
대기업은 선택과 집중 위해 비핵심 계열사 매각
내년에도 경영권 변동 늘 듯
[ 임도원 기자 ]
올 들어 상장기업의 최대주주 ‘손바뀜’이 최근 10년 내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성장이 정체됐거나 한계 상황에 봉착해 활로를 찾지 못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경영권 매각이 줄을 잇는 추세다. 수십년 동안 회사를 경영해온 창업주 일가까지 회사 매각 행렬에 합류하고 있다. 대기업들도 선제적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비주력 계열사에 대해 하나둘씩 경영권 매각을 진행하는 움직임이다.
○경영악화·구조조정 여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사가 최대주주가 변경됐거나 변경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건수는 지난달 26일까지 유가증권시장 58건, 코스닥 208건 등 총 266건이다. 지난해 전체 건수(195건)보다 36%가량 많은 수치다. 2006년 이후 최근 10년 동안 연간 기준으로 최대 건수다.
이 가운데는 회사 창업자 일가의 경영권 매각도 적지 않다. 73년 역사의 도자기 제조업체 행남 未穗?지난 11일 주식 양도계약으로 최대주주가 김용주 회장에서 더미디어로 변경됐다. 김 회장은 고(故) 김창훈 창업주의 손자다.
산업용 밸브업체 엔에스브이는 지난달 김태만 대표가 이오에스이엔지와 디와이에 경영권을 넘겼다. 김 대표는 1984년 회사를 설립한 뒤 30여년 동안 최대주주 자리를 지켜왔다.
2001년 설립된 화장품 제조회사 제닉은 지난달 최대주주가 창업주인 유현오 대표에서 솔브레인으로 변경됐다.
창업자들이 올 들어 경영권을 내놓은 것은 경영 악화가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행남자기는 유럽 고가품 브랜드와 중국 인도네시아 저가품 브랜드에 밀리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매출은 2012년 461억원에서 2013년 439억원, 지난해 424억원으로 하락세를 이어오고 있다. 영업손실은 지난해 24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다.
엔에스브이는 플랜트기자재 분야 업황이 나빠지면서 2013년 64억원, 지난해 25억원으로 2년 연속 영업손실을 냈다. 제닉도 영업이익이 2012년 71억원에서 2013년 39억원, 지난해 19억원으로 매년 ‘반토막’ 나다시피 해왔다.
○대기업 경영권 변동도 속출
대기업 계열사의 경영권 변동도 잇따르고 있다. 삼성정밀화학은 지난달 삼성SDI의 케미컬부문, 삼성BP화학과 함께 롯데그룹으로 넘어갔다. OCI그룹은 반도체 특수가스 제조업체인 OCI머티리얼스를 지난달 SK그룹에 팔았다.
삼성과 OCI그룹은 ‘선택과 집중’을 위한 사업재편 차원에서 비핵심 계열사의 경영권을 매각했다는 평가다. 삼성은 삼성정밀화학 등의 매각으로 화학산업에서 손을 떼고 정보기술(IT)과 바이오 사업 육성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OCI는 OCI머티리얼즈 매각 후 태양광 사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경영 악화 가능성을 우려한 발빠른 경영권 매각도 눈에 띈다. CJ그룹은 지난 10월 CJ헬로비전을 SK그룹에 매각했다. SK그룹이 씨앤앰 인수를 검토하고 있던 점이 이번 매각에 영향을 줬다는 게 투자은행(IB)업계의 설명이다.
SK그룹이 경쟁업체인 씨앤앰을 인수하면 CJ헬로비전이 큰 위협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CJ그룹은 아예 CJ헬로비전을 파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봇물 이룰 듯
IB업계는 내년에도 기업의 경영권 변동이 줄을 이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경영권 매각이 진행 중인 기업들이 눈에 띈다. 두산그룹은 내년 초를 목표로 두산공작기계 매각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매각을 검토 중이다.
경영권 매각 추진설이 도는 기업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내츄럴엔도텍은 코스맥스가, 씨아이테크는 중국 기업이 인수한다는 루머가 돌면서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다. 대기업 계열사도 매각설에 휩싸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SK그룹에 인수된다는 설이 돌았다. 해당 회사들은 모두 매각 및 매입설을 부인했다.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경영악화를 겪는 기업이 늘어나는 데다 기업 오너들이 상속세 등에 따라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 움직임과 맞물려 기업들의 경영권 변동은 더욱 많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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