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바둑황제 조훈현
"체통 못 지킨다" 욕도 먹지만 바둑 대중화 위해 뭐든 할 것"
에세이 펴낸 바둑황제, '암 의심' 진단받고 집필 결심
스승들·제자 이창호 이야기 담아…9월엔 삼성사장단 앞에서 강연도
이젠 전국민 바둑 전도사로…휴대폰 안 쓰는 '아날로그'형 인간
바둑은 예외…온라인 대회도 출전, "지금껏 받은 사랑 갚아 가겠다"
[ 최만수/송태형 기자 ] ‘반상(盤上)의 전설’ 조훈현 9단(62)이 약속 장소로 잡은 곳은 서울 평창동의 한 피자집이었다. 부인 정미화 씨와 함께 나온 ‘바둑 황제’의 낯빛이 좋았다. 그는 피자가 나오자 바로 한 조각을 뚝딱 해치운 뒤 말문을 열었다.
“담배를 끊은 뒤로 가리는 음식이 없어요. 한창 담배를 많이 피울 땐 밥도 조금만 먹어서 삐쩍 말랐었죠. 요즘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식도 즐기는 편입니다.”
전성기 시절 조 9단의 별명은 ‘장미의 기사(棋士)’였다. 긴 ‘장미’ 담배를 물고 시원시원한 속기(速棋)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이 그의 상징이었다. 하루 서너 갑씩 담배를 태웠지만 마흔셋(1996년)에 딱 끊었다. 담배를 끊고 매일 북한산을 오르자 식욕도 좋아졌다. 그는 “젊었을 땐 체력이 부족해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대국을 치르기도 했다”며 “담배를 끊은 뒤 바둑도 체력이 있어야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암 추정’ 진단받고 책 쓰기로
바둑 외에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조 9단은 올해 자신의 인생을 복기(復棋)한 첫 에세이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지난 9월에는 삼성사장단 앞에서 강의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1시간30여분 동안 고수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했다고 한다.
이 피자집의 자랑거리인 화덕피자에 이어 새우, 토마토를 넣고 볶은 감베리 그라미네 파스타가 나왔다. 조 9단은 능숙하게 새우 껍질을 까면서 자서전을 쓰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작년에 암으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앞이 캄캄했죠. 지금은 끊었지만 예전에 그렇게 담배를 피워댔으니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종 확진을 기다리는 2주 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스승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나만 갖고 있어선 아깝다는 것, 이제 나의 이야기를 남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은 네 남자 이야기다. 그의 두 스승 세고에 겐사쿠와 후지사와 슈코, 세계를 제패한 불세출의 기사인 조 9단 자신, 그를 꺾고 정상에 오른 제자 이창호가 주인공이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바둑에 입문했다. 학교도 듬성듬성 다녔고 조직 생활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조 9단은 “나는 바둑밖에 몰랐지 ?머릿속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요동치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며 “세계 정상에 오르고 제자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겼다가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재주보다 인품을 강조했던 스승
조 9단의 정식 스승은 일본의 세고에 겐사쿠다. 현대 일본 바둑을 정립한 위대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는 일흔넷(1963년)에 조훈현을 내제자(內弟子·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생활하며 가르치는 제자)로 받아들였다. 조 9단이 열 살 때였다.
“스승님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한 명씩만 받아 세 명의 제자를 키웠습니다. 우칭위안을 키워 중국에 보답했으니 조훈현을 잘 키워 한국에 보답하겠다면서요. 하지만 스승님께 정작 바둑 기술은 별로 배우지 못했어요. 1년에 겨우 한 판 정도 가르침을 받았죠. 그때는 느낄 수 없었지만 바둑 기술보다는 사람의 됨됨이와 그릇을 중시했던 스승님의 가르침은, 지금 돌아보면 정말 깊고 컸습니다.”
조 9단은 갑자기 “스승의 역할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큰 바둑을 담기 위해서는 먼저 큰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스승은 제자가 마음껏 배우고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울타리(환경)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이 세고에 선생님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흔히 부모든 직장상사든 답을 가르쳐주려고 하는데, 그것보다 스스로 깨닫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 방법”이라며 “강연에서도 이를 가장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조 9단은 일본의 한 프로기사와 내기 바둑을 뒀다가 세고에 문하에서 파문당할 뻔한 적도 있다. 주변의 강요에 마지못해 둔 내기 바둑이었지만 세고에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당장 짐을 싸서 일본을 떠나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조 9단은 2주일간 도쿄의 식당에서 접시닦이를 하는 등 방황한 끝에 간신히 용서를 받았다. 스승 세고에는 그만큼 엄격하게 바둑의 도와 기본을 강조했다. 스승은 군 입대 문제로 조 9단이 귀국하고 친구인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살하자 상심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젊은이라면 싸워야”
세고에가 조 9단의 정신적 스승이라면 후지사와 슈코는 바둑 기술을 가르친 스승이다. 후지사와는 대범하고 빠른 기풍(棋風)을 조 9단에게 전수했다. 후지사와는 강직한 세고에와 정반대였다. 그는 자유분방하고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선이 굵은 성품이었다.
매일 위스키에 취해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했지만 큰 타이틀전을 앞두고는 두 달 전부터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최다 상금이 걸린 기성 타이틀전에서 우승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금을 타면 다시 술과 도박에 빠졌다. 조 9단에 대한 후지사와의 사랑은 각별했다.
“하루는 제가 보고 싶다며 짐도 없이 위스키 한 병만 달랑 들고 한국에 오셨어요. 호텔에서 사흘 밤낮을 바둑만 두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세고에 선생님과는 반대쪽으로 끝까지 통달하신 분이었죠.”
후지사와는 젊은 바둑 기사들이 오래 바둑판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젊은이는 싸워야 한다’는 것이 후지사와의 지론이었다고 한 ? 바둑이 격렬할수록 강해지는 조 9단의 강점은 그런 스승과의 수많은 속기를 통해 길러졌다.
◆제자에게 배운 승패의 의미
두 스승에 대한 얘기가 끝날 즈음 뜨거운 양파 수프가 나왔다. 조 9단이 이 집에서 특히 좋아하는 메뉴라고 한다. 그는 제자 이창호의 얘기를 꺼냈다.
“두 스승님을 만났던 것처럼 창호를 만난 것도 운명이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창호는 나와 스타일이 전혀 달랐어요. 오히려 그 뒤에 내제자가 될 뻔했던 김지석이 나와 닮은 과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김지석은 결국 제자로 키우지 못했어요. 그런 것도 다 운명이죠.”
조 9단은 1989년 잉창치배에서 세계 정상급 기사들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의 바둑 영웅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최고위전에서 제자 이창호에게 져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이창호는 최고위전을 시작으로 5년 만에 스승의 타이틀을 모두 가져갔다.
그는 “이창호와 같은 식탁에 앉아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나눠 먹고,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나와 전투를 치른 뒤 한 사람은 승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패자가 돼 같이 집으로 돌아간 날이 참 많았다”며 “날마다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타이틀을 빼앗기더라도 제자에게 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타이틀을 잃고 나서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며 “지금은 이기고 지는 것과 상관없이 그저 바둑이 좋아서 둔다”고 했다. 달관의 경지였다.
◆“바둑 잘 두려면 힘 쓰는 운동해야”
조 9단은 등산 외에 골프도 즐긴다. 10년 전 처음 골프채를 잡았고 스코어는 90대를 넘나든다. 그는 “창호에게 지고 완전히 밀려난 뒤 할 일이 없어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돼서 오기로 더 열심히 쳤다”며 “바둑은 앉아서 하기 때문에 골프처럼 몸을 쓰는 운동을 해야 균형이 맞는다”고 말했다.
조 9단은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휴대폰이 없이 다닌다. 가족들의 잔소리로 요즘엔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만 한 달에 고작 1분도 안 쓴다는 게 부인 정씨의 설명이다. 그는 “별로 편리하지도 않고 생각을 방해하는 것들을 왜 들고 다녀야 하느냐”고 반문하며 웃었다.
조 9단은 ‘아날로그’적인 생활을 고집하고 있지만 바둑을 기반으로 개발한 온라인 보드게임 ‘바투’에도 출전했다. 헤드셋을 쓰고 마우스를 쥔 조 9단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에선 ‘바둑 국수’가 체통을 지키지 못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아마 세고에 선생님이 보셨다면 저를 혼내셨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세상이 변했습니다. 바둑의 도와 예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외면할 수는 없어요. 일본 바둑이 그래서 지금 침체된 것 아닙니까. 바둑을 대중화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는 욕을 먹더라도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조훈현이 받아온 사랑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훈현의 단골집 더 코너 키친
화 熾【?구워내는 피자 맛에 배우 이선균도 ‘단골’
더 코너 키친은 서울 평창동 세검정 사거리를 지나 북악터널에 진입하기 전 서울예술고등학교 근처에 있다. 옆에 널찍한 공영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편리하다.
더 코너 키친의 자랑거리는 화덕에서 직접 굽는 피자다. 통옥수수와 새우를 넣고 구운 ‘마약 옥수수 피자’(1만8000원), 네 가지 종류의 치즈를 얹어 구워낸 ‘꽈뜨로 포르마지 피자’(1만8000원)가 인기 메뉴다. 화덕에 구워 도우가 쫄깃쫄깃하고 담백하다.
파스타 중에는 오징어 먹물 링귀니에 모시조개, 중합, 바지락을 넣어 만든 ‘봉골레 먹물 링귀니’(1만7500원)와 숭어알, 깻잎, 조개를 넣어 만든 ‘보타르가 딸리아딸래’(1만9500원)가 대표 메뉴다.
싱싱한 채소와 치즈가 듬뿍 들어 있는 샐러드류는 1만4000~1만7000원이다. ‘마이셀 생맥주’와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자리가 널찍해 가족 외식은 물론 단체 회식도 충분하다. 조훈현 9단 가족과 배우 이선균 씨 등이 단골이다. (02)391-2233
아홉 살에 프로 입문…한국바둑 위상 끌어올려
조훈현 9단은 ‘국수(國手)’ 또는 ‘바둑 황제’로 불린다. 9세 7개월에 프로에 입문했다. 1989년 한·중·일 최정상의 기사들이 참가한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 초대 우승을 차지하며 당시만 해도 변방으로 평가받던 한국 바둑을 섟?바둑의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국내 전(全) 타이틀 석권 세 차례(1980·1982·1983년)를 포함해 세계 최다승(1935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기록을 보유한 ‘반상(盤上)의 전설’이다.
△1953년 전남 목포 출생 △1962년 프로 입단(세계 최연소) △1966년 일본기원 초단 △1982년 9단 승단(한국 최초) △1989년 제1회 잉창치배 우승 △1989년 은관문화훈장 △1994년 국제기전 사이클링 히트(잉창치배, 후지쓰배, 동양증권배 우승) △2002년 삼성화재배 우승
최만수/송태형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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