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위축에 통신비도 늘린 단통법
스마트폰 산업 경쟁력도 깎아내려
유례없는 반시장 규제는 철폐해야"
이병태 <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
‘국민 통신비 절감’이란 대통령선거 공약과 국회의 인기영합적 규제 결과물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으로 인해 지난 1년 사이 1000개가 넘는 영세 휴대폰 판매점이 폐업했다. 한국 경제를 견인하던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과도한 규제로 인한 판매 위축과 탄력적 가격 경쟁 수단을 박탈당한 채, 미국 애플과 중국 업체 틈바구니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본 소니, 핀란드 노키아의 몰락은 글로벌 스마트폰산업이 얼마나 냉혹한 경쟁에 노출돼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내 스마트폰 산업의 경쟁력을 뒷받침하기는커녕 단통법 규제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현실을 방치하고 있는 형편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가계 통신비를 절감할 수 있는 데다 모두가 비슷한 가격에 단말기를 살 수 있다며 단통법을 옹호해왔다. 정부는 단말기당 평균 가입요금이 지난해 7~9월에 4만5155원이었는데 올해는 3만9932원으로 11.6% 줄어 “단통법이 가계 통신비 ?낮추는 주요인”이라고 홍보해왔다. 또 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올 1분기 가계통신비는 단통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0% 정도 낮아졌다고 했다. 미래부 장관도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결과를 보고했다.
실상은 어떨까. 이동통신회사의 올 3분기 공시자료를 보면 단말기당 평균 가입요금은 월 3만5144원에서 3만4734원으로 월 410원, 고작 1% 줄었을 뿐이다. 그것도 단통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알뜰폰 가입자 증가에 의한 절감효과였을 뿐이다. 공시가 이뤄진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통계에 따르면 일반 휴대전화의 통신비 지출은 월 3만4628원에서 3만6601원으로 월평균 1972원, 전년 대비 5.7%가량 되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로 인한 단말기 구입 가격의 증가를 감안하면 국민의 통신비 지출은 더 많이 늘었고, 단말기값이 너무 비싸져 교체하지 못하는 데 따른 소비위축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중고 아이폰을 가져오는 러시아인에게 최신 휴대폰을 20만원대에 공급하며 판촉하고 있고, 미국 소비자들은 여전히 70~80%대의 단말기 지원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 지난 11일 중국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광군제’ 하루 세일 행사 매출은 912억위안(약 16조5000억원)에 달했는데 이날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한 품목은 스마트 기기들이다. 국내에서는 단통법으로 인해 스마트폰의 대폭적인 할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반 국민이 이 규제로 얼마나 손해를 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통신비 11% 절감은 통신시장의 기초 지식만 있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단통법 시행으로 그나마 개선됐다는 통신사들의 영업이익률은 5~10%대다. 따라서 가계통신비가 11% 이상 줄었다면 모든 통신회사는 적자에 허덕여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사실과 다른 대국민 홍보와 국회보고가 이뤄졌을까. 미래부가 인용한 통계청 자료가 엉터리거나, 이동통신산업의 기본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관료들이 통계를 무비판적으로 원용했거나, 휴대폰 가입요금과 실질 청구요금은 차이가 크다는 것을 숨긴 채 대선 공약으로 시행된 규제인 만큼 옹호할 수밖에 없어서였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주요 20개국(G20)의 일원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부처라기엔 낙제점 수준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국회가 사실 확인을 분명히 하고 단통법과 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반(反)시장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이병태 <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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