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명무실한 성과급 개편 '압박'
연공서열 호봉제…남자직원 평균연봉 1억 넘어
"기본급 비중 줄이고 성과급 차등폭 늘려야"
[ 이태명/김은정 기자 ] A은행 수도권 지점에 근무하는 김모 차장(48)은 지난해 1억2000만원의 급여를 받았다. 연봉제를 적용받는 지점장과 달리 그는 호봉제 적용 대상이라 기본급으로만 1억1000만원을 받았다.
인사고과에서 C등급을 받았지만 성과급을 덜 받을까봐 걱정도 하지 않았다. 성과급은 개인 성과가 아니라 지점 성과에 따라 지급되고, 인사고과는 승진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지점이 지난해 A등급을 받으면서 김 차장도 1000만원의 보너스를 챙겼다.
은행권을 향한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 압박이 거세다.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는 데 성과에 관계없이 급여가 오르는 호봉제 탓에 고임금 구조가 고착화되고, 이런 은행권 고임금이 다른 업종에도 영향을 미쳐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정부는 ‘저성과자’를 솎아내지 못하는 은행의 유명무실한 성과급제부터 손보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은행권 임금체계 어떻길래…
지난해 국내 은행의 직원(계약직 포함) 1인당 평균 연봉은 7600만원이었다. 남자 직원으로 국한하면 평균 연봉이 9700만원으로 올라간다. 급여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약직 등을 빼면 정규직 남자 직원의 평균 연봉은 1억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업무성과에 따른 급여 격차도 크지 않다. 은행별 편차는 있지만 직원(부지점장 미만) 간 성과급 차이는 100만~300만원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이유는 은행들이 호봉제를 고수하고 있는 데다 성과급은 개인별 성과가 아니라 지점 성과와 연동해 지급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지점장, 부지점장 등 관리자급에 대해선 연봉제를 적용한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기본급의 일정액(20~30%)을 지점·본부·은행성과 목표 달성 여부를 따져 등급별로 차등 지급한다. 업무 성과에 따라 지점장별 성과급 수령액이 1000만원을 훌쩍 넘는 곳도 있다.
반면 은행의 일반 직원들은 호봉제 적용을 받는다. 근무연수에 따라 호봉은 계속 올라가고, 이와 별도로 성과급도 받는 구조다. 특히 성과급은 대다수 은행이 지점 성과와 연동해 준다. 개인 성과는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업무능력이 뒤처지는 직원도 소속 지점이 A등급을 받으면 최고 수준의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당국이 문제로 지적하는 게 이 대목이다.
◆성과연동 보상체계 확대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앞으로 은행권 임금·성과보상 체계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업무 성과가 낮은 데도 고(高)성과자와 기본급은 같고 성과급도 별반 차이가 없는 건 비정상적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과장은 “기본급 대비 성과급 비중이 공공기관도 20~30%인데 은행 등 금융회사는 1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5일 금융연구원 주최 세미나에선 금융당국이 원하는 개편 방향이 대략적으로 나왔다. 서정호 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은행의 성과보상 체계 가운데 직무성과급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은행들은 일반 직원에 대해 상여금의 80~120%를 지점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데, 이런 체계로는 제대로 된 성과보상이 어렵다”고 말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국내 전체 산업의 호봉제 도입비율은 60%인데 은행 등 금융업종의 도입비율은 92%에 달하고, 임금 수준(월평균 급여)도 전체 산업의 139.4%로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호봉제 대신 성과연동형 임금체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명/김은정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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