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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증시 3.0 혁신보고서②] 삼성전자 성장할 때 증권사 '슈퍼 갑' 눈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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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1년 앞둔 증권사 임원 A씨. 20년 넘게 몸담은 투자업계를 조만간 떠나야 하는 그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온 만큼 투자업계 미래는 밝다고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 째 정부에선 '금융 개혁'을 외쳐대는데도 A씨 눈에 달라져 보이는 건 정부가 '탁상행정'할 때 쓰는 탁상 뿐이다.

"삼성전자가 시가총액 200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투자업계는 정부 규제, 관피아와 씨름하느라 한 걸음도 나가지 못 했습니다. '슈퍼 갑' 금융 당국 눈치 보기에 연초 세운 사업 계획은 온데간데없고 땜질식 처방만 있을 뿐이죠. 이런 환경에서 자본시장 혁신을 외쳐 뭐합니까."

A씨는 정권 입맛 따라 바뀌는 정책, 현장 반영 못하는 규제, 비(非) 전문가들의 낙하산 인사를 한국 증시가 성장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 5년마다 바뀌는 정책…경쟁력 요원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7위'다. 우간다(81위), 베트남(84위), 부탄(86위)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금융위원회는 WEF 평가 결과에 대해 "조사 방식이 낱?떻?위주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해명자료를 내놨다. 그러나 정작 투자업계 내부에선 한국 금융시장을 싸늘하게 보는 외부 시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증권사 한 고위 임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겁부터 난다"며 "5년마다 바뀌는 정부 입맛에 맞춰 금융 서비스를 내놔야 하는 상황에선 시장 성숙이나 경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 시절 추진했던 '녹색금융'과 노무현 정부 때 추진했던 '동북아 금융허브', '벤처기업 지원' 역시 모두 정권 교체와 함께 빛을 잃었다.

녹색(친환경) 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을 지원하자던 '녹색금융'은 금융 당국 내에서도 반짝 하고 사라진 정책으로 취급받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5월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기술금융과 관련한 모임 자리에서 "기술금융은 (정권이 바뀌면서 사라진) 녹색금융과 다르다"며 "반드시 지속해야 하고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업계에서는 기술금융은 물론 창조금융, 청년희망펀드 등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 역시 오래 가기 힘들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기술금융은 녹색금융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청년희망펀드는 전형적인 관치금융 행태라는 점에서 지속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다. 청년희망펀드의 경우 기부를 강제한다는 논란까지 빚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현 정부 출범 후 '통일대박론'이 업계 화두가 되며 통일펀드 등 관련 상품들이 줄지어 나왔다"며 "불과 1년도 안돼 그런 상품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남아 있는 상품들도 존재감이 미약하다"고 설명했다.

◆ 현장과 동떨어진 각종 규제 여전

금융위는 지난 3월 임 위원장 취임과 함께 금융사 자율성을 강조하며 각종 규제에 메스를 들이댔다. 특히 투자업계에 대해선 글로벌 경쟁력이 한참 뒤처져 있다며 각종 '증시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투자업계는 여전히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최근 열린 한 금융개혁 관련 토론회에서 "개혁이 많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며 "손에 잡히는 것이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에 정작 업계가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은 쏙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업계가 당국에 바라는 것은 자본시장으로의 자금유입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라며 "증권거래세 인하, 파생상품 양도거래세 부과(내년부터 시행예정) 폐지 등 세제를 포함한 대책이 나와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증권거래세율이 10년 넘게 '0.3%'를 유지하면서 증권사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며 "고금리에서 저금리 시대로 변한 현실이 반영되지 않은 규제인데다 증권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은 가열되고 있어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투자자를 위한 것이라고 내놓은 정책마저도 현실성 없거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일례로 국민 자산 증식을 목표로 내년 도입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계좌 가입 자격이 근로소득자 또는 자영업자(사업소득자)로 한정돼 있어 은퇴자, 프리랜서, 영세 농어민 등 실제 필요한 계층은 소외됐다는 게 투자업계 의견이다.

운용사 한 관계자는 "과거 소장펀드니 재형저축 등도 총 급여 5000만원 이하로 제한해 소규모 펀드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이번 ISA 역시 반쪽짜리 그릇에 그치지 않을 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여전히 탁상공론에 기반한 정책을 내놓고 있는 점 역시 불신을 조장하고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탁상행정 정책으로는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이하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중단을 지목했다.

대형 증권사 지점의 한 판매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시장 과열'을 우려한 조치라면 중국 증시가 고점을 찍었을 ? 미리 대비했어야 한다"며 "가만히 있다가 역사적 저점 수준으로 내려가니 ELS 발행을 중단한 건 시장을 거꾸로 보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ELS 관련 부서 관계자는 "H지수 ELS 발행을 중단하라는 건 전형적인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며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 손실 구간(녹인 구간) 진입 가능성이 작아져 안정성이 높아지는 데 당국이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지적했다.

◆ 낙하산 인사 내려오니 사업은 뒷전

해마다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도 투자업계가 정부, 금융 당국을 불신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정권의 보은적 성격이 강한 이러한 인사로 비(非) 전문가 출신이 임원으로 부임하면서 일관된 사업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투자업계 입장이다.



이달 초 금융연수원장의 새로운 수장이 된 조영제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최근 낙하산 인사 논란의 대표 사례다. 금융노동조합은 조 전 부원장이 이른바 '성완종 게이트'인 경남기업 대출특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것과 관련해 부적격 인사라며 반발해왔다.

조 전 부원장은 이 사건으로 지난 6월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BS금융지주회장 사퇴 압력과 장녀 결혼식 축의금 논란이 불거지면서 차기 원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정연대 코스콤 사장도 11개월 간 공석으로 있던 사장직에 부임하면서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취임 초부터 끊임 없는 '보은인사' 논란을 빚었다.

정 사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학교 동문으로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 대통령을 공개 지지한 바 있다.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역시 박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이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공공기관과 공공기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금융회사 34곳의 전체 임원 출신을 분석한 결과 총 268명 중 112명이 관피아(관료출신 낙하산 인사), 정피아(정치인 관련 낙하산 인사), 연피아(연구원 출신 낙하산 인사)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원의 42%가 낙하산 인사 출신인 셈이다.

증권사 한 임원은 "전문 영역을 구축해 온 내부 인사 대신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외부 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임원급으로 내려오면서 장기적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꿈도 못꾼다"며 "이는 금융 당국에 대한 업계의 신뢰를 해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민경/채선희/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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