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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반토막 난 유가, 이란의 패권 확대…'중동 맹주' 사우디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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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컨트리 리포트] 반토막 난 유가, 이란의 패권 확대…'중동 맹주' 사우디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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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셰일혁명발 유가 급락
시장 점유율 지키려 '치킨게임'…올 재정적자 GDP의 21% 달해

예멘·시리아 내전 타격
파병 길어지며 오일머니 급감…'중동 맞수' 이란, 영향력 커져

메카 순례자 1400명 압사
피해 국가서 비난 목소리…'이슬람권 수호자' 위상 흔들

미국 외교지 "사우디, 붕괴 걱정해야"



[ 이정선 기자 ]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이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5월 “사우디가 미국과의 원유시장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자평했다. 사우디가 감산 없이 공급량을 계속 늘리면서 국제 유가 하락을 견디지 못한 미국의 중소형 셰일오일업체들이 문닫는 상황을 근거로 한 주장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생산단가가 이보다 높은 미국 셰일오일업체 16곳이 부도났고, 업계 전체적으로 1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석유업계의 손실액은 올 상반기 320억달러(약 37조원)에 달했다.

미국과의 ‘유가 치킨게임’에서 사우디가 입은 상처도 만만치 않다. 원유판매 수입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로 ‘중동의 맹주’라는 간판에 흠집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승산이 뚜렷하지 않은 예?내전에 뛰어들면서 사우디의 재정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중동의 맹주’ 자리를 노리는 이란은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 적극 개입하면서 사우디를 포위해 들어오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 7일 ‘사우디의 붕괴를 걱정해야 할 때’라는 글을 통해 “사우디의 경제난, 이란과의 갈등, 예멘 내전 등의 현안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글로벌 원유시장은 물론 중동안보에 심각한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허리띠 졸라매는 사우디

지난 8일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한 ‘살만 국왕의 메모’는 경제난에 처한 사우디의 속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살만 국왕이 지난달 28일 재무장관에게 보낸 이 문건에는 사우디 정부가 자동차와 가구 구매를 중단하고 출장경비, 인프라 투자를 대폭 삭감해야 한다는 긴축조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사우디의 올해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1.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사우디 재정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의 셰일혁명으로 촉발된 유가 하락이다. 지난해 6월 배럴당 110달러 선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현재 50달러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7월 원유생산량이 하루 960만배럴까지 늘어나면서 최대 산유국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원유 수출이 국가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사우디는 유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셰일오일을 견제하며 시장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OPEC을 통한 원유 공급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인사이트디스커버리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금융청(SAMA)은 유가 하락으로 외환보유액이 급감하자 최근 6개월 동안 해외펀드에서 최대 700억달러(약 81조원) 규모의 자산을 회수했다. 사우디의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730억달러가 줄었다.

미국 학술지 폴리티컬인사이트는 현재 2900만명(2013년 기준)인 사우디 인구의 증가세를 감안할 때 2020년에는 유가가 배럴당 119달러, 2030년에는 322달러가 돼야 사우디가 재정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유가에 따라 사우디의 재정 악화가 장기화할 수도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란·시리아 등 시아파 압박 거세져

사우디가 지난 3월부터 공습과 지상군 파병을 통해 예멘 내전에 뛰어들면서 ‘오일머니’는 더 말라가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맹주 격인 사우디는 국경을 맞댄 예멘이 시아파 계열의 후티 반군 손에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예멘은 사우디의 주요 석유 수송로 중 하나인 만데브 해협 길목에 있다.

시리아 내전도 사우디의 지정학적 활동 반경을 좁히고 있다. 시아파인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가세하고,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까지 적극 나서면서 수니파 반군을 지원했던 사우디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특히 이란이 서방과의 핵협상 타결 이후 중동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이란-시리아-이라크-레바논(헤즈볼라)-예멘 반군(후티) 등으로 이뤄진 이른바 ‘범시아파 벨트’가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사우디는 이 같은 분위기에 자극받아 자국 내 주요 원유 매장지역인 동부 시아파 주민들의 분리 독립 움직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셰일혁명으로 미국이 중동지역 안정에 대해 전통적인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도 사우디를 취약성에 노출시키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메카 행사, 범이슬람 기구가 맡아야”

지난달 24일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인 ‘하지’ 기간 중 이슬람 성지 메카 인근에서 발생한 순례자 압사 사건은 사우디의 처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당초 700여명으로 추산됐던 사망자는 최근 1450여명으로 증가했고, 희생자 국가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고로 자국민 460여명이 사망한 이란은 사우디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슬람의 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관리하는 사우디가 자칭 이슬람권의 ‘수호자’를 자처해왔지만 이번 참사로 종교적 권위가 약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헤즈볼라는 최근 “사우디가 갖고 있는 하지에 대한 관리권한을 범이슬람기구인 무슬림위원회가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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