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낭만의 나라 체코로
프라하성 은은한 야경 보며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중세 유럽마을로 타임머신 타고~'고고'
[ 김명상 기자 ]
연인들의 키스를 이끄는 로맨틱한 분위기, 걸음마다 솟아올라 말을 건네는 중세 유럽의 전설. 체코는 이 모든 것을 담은 마법의 세계다. 아름답다 못해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한 공간. 좀 더 이 순간을 붙들고 싶은 생각 때문일까. 황금빛 맥주 한 잔을 앞에 둔 여행자마다 밖으로 던진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바라보는 풍경이 영원처럼 이어지기를…. 체코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 도시는 찬란한 야경을 간직한 프라하, 중세 유럽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다. 두 도시는 방심한 여행객의 가슴을 한참이나 흔들어 놓았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낭만 도시
과거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프라하는 ‘천년의 수도’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체코의 서부를 라틴어로 ‘보헤미아’라고 부르는데 프라하는 보헤미아 지방의 중심 도시였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아하고 화려한 예술적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프라하는 긴 시간을 이동한 여행자의 피곤마저 흥분으로 바꿔놓는 도시다. 먼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프라하 성(Prague Castle)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성인 프라하 성은 9세기부터 건설을 시작해 14세기 즈음 현재와 비슷한 모습을 갖췄고 지금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 중이다.
성 내부에 여러 시설이 있지만 제3정원에 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St. Vitus Cathedral)이 가장 눈에 띈다. 길이 124m, 너비 60m의 건물로, 탑의 최고 높이는 96.5m에 이른다. 9세기에 교회의 원형이 지어졌고 1929년에야 완공됐다. 비용 부족, 전쟁 등으로 인한 공사 중지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600년이 걸린 대공사였다. 518년간 지속된 조선의 역사보다 더 오랫동안 지은 셈. 검게 변색된 성당의 외부 벽돌이 그 장구한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외관은 미려한 조각들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어느 곳의 한 조각을 떼어내도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을 만큼 예술적이다.
성당 앞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거대한 대성당을 사진 한 장에 담으려면 어지간한 카메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방문객들은 조금이라도 성당의 모습을 담으려고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거나 아예 자리에 눕는다. 재미있으면서도 경건하게 다가온다. 두 손을 모으고 몸을 낮추며 촬영하는 여행객의 행동은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한 신도들과 닮았다.
카프카의 숨결이 녹아든 거리
프라하 성의 동쪽으로 가면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집이 늘어선 황금소로(Golden Lane)에 닿는다. 성에서 일하는 시종, 집 ? 보초병 등이 거주하던 곳으로, 프라하 성을 터전으로 살던 이들의 숨결이 녹아 있다. 16세기 후반에는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에 황금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오랜 역사의 흔적 때문인지 작은 골목의 바닥 돌 하나에도 사연이 담겨 있는 듯하다.
거리의 여러 집 중 눈여겨봐야 할 곳은 22번지 집이다. ‘변신’으로 잘 알려진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가 소설 ‘성(城)’을 이곳에서 집필했다. 지금은 카프카 관련 책과 엽서, 달력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카프카는 41세의 짧은 생을 대부분 프라하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프라하는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은 어머니는 맹수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에게 프라하는 벗어날 수 없는 애증의 공간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유럽을 대표하는 도시로서 전 세계 여행객의 사랑을 듬뿍 받는 지금의 프라하를 본다면 카프카가 어떤 글을 남길지 자못 궁금해진다.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카를교
프라하에서도 연인들의 심장을 저격하는 곳은 바로 카를교(Charles Bridge)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다리로 칭송받는 카를교는 그 이름만으로 세계 각국 여행객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프라하를 중세 유럽에서 가장 번성한 도시로 만든 카를4세가 1357년 블타바 강에 놓았다.
카를교는 프라하 여행의 중요 기점이다. 프라하 성뿐만 아니라 쇼핑 거리인 네루도바 거리와 연결되며, 프라하 천문시계와 높이 80m의 첨탑이 인 瓚岵?틴(Tyn) 성당이 자리잡은 구시가지 광장과도 가깝다. 카를교는 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낮에는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듯 거니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으로 가득하고, 밤에는 야간 조명에 빛나면서 강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다리 위를 오가는 이들의 얼굴마다 환희와 설렘이 가득하다. 마침내 카를교 위에 올랐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럽다는 듯이. 낭만이 넘치는 카를교에서는 누구나 ‘프라하의 연인’이 된다.
다리 양옆에는 30개의 성인상이 늘어서 있다. 성경의 인물이거나 체코의 성인들을 새긴 조각상이다. 그중에서도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이 가장 유명하다. 1393년 프라하 대주교의 총대리였던 네포무크는 카를교에서 순교한 인물이다. 부정을 저지른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지 않아 고문을 당한 후 카를교에 던져진 것. ‘다리에 선 모든 이들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유언 때문일까. 지금도 그의 순교 장면이 담긴 부조를 만지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리를 건넌 후 강변을 따라 걸었다. 사진으로만 마주하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유유히 흐르는 블타바 강 위에 선 카를교 뒤에는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로맨틱한 프라하 풍경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려다 잠시 멈추고 그냥 바라봤다. 눈과 마음이 몽환적인 불빛에 물들어 간다. 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덥힌다. 일렁이는 물결과 불빛 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이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뭔가 울컥한 느낌. 프라하의 밤에는 그리움을 불러내는 힘이 서려 있었다.
중세 유럽마을이 그대로 남은 체스키 크룸로프
프라하에서 남쪽으로 170㎞ 떨어진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제2의 프라하’로 불린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프라하와 함께 체코 관광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잡았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14세기에 로젠베르크 가문이 다스리면서 번영했고 16세기에는 남부 보헤미아의 중심지가 됐다. 인구 1만50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는데 크기로 보면 도시라기보다 마을에 가깝다.
블타바 강 상류가 말발굽 모양으로 휘감아 도는 이곳은 18세기 이후 지은 건물이 거의 없을 만큼 중세 유럽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는데 취향에 따라 프라하보다 더 멋지다는 찬사가 나올 만큼 아름답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아치형의 망토다리(Cioak Bridge)를 통과하니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체코에서 프라하 성 다음 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으로 가면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성의 정문 옆에 있는 높이 54.5m의 흐라데크(Hradek) 타워로 향했다. 벽에 입체감을 주는 스그라피토(sgraffito) 기법으로 장식된 탑은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징물이며 전망대 역할을 겸한다. 좁디 좁은 234개 계단을 쉬지 않고 올라갔지만 숨을 가다듬을 새도 없다. 온통 붉은 지붕을 얹은 집들로 빼곡한 마을 풍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요정들이 뚝딱 하고 지은 듯한 집들이 발밑에 펼쳐져 있다. 동화나라보다 더 ?곳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굳이 테마파크에 갈 필요가 없으리라. 시간의 흐름에서 비켜선 모습에 관광객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예술과 여유를 벗 삼는 여행
성의 입구에서 내려가면 연결되는 라트란(Latran) 거리는 영주를 모시는 하인들의 거주지였다. 이곳에는 각종 볼거리, 먹을거리,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아 꽤 흥미롭다. 팔다리에 실을 매달고 움직이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전시한 마리오네트 박물관(Muzeum Marionet)도 만날 수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또 다른 볼거리는 에곤 실레 아트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 에곤 실레의 작품을 전시한 곳이다.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체코, 그것도 프라하가 아니라 체스키 크룸로프에 그의 전시관이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은 실레 어머니의 고향이자 그가 화가가 된 이후 한때 작업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옛 양조장 건물을 개조한 곳에 그의 아트센터가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셈. 인간의 고독과 단절감을 강렬한 색채와 선으로 표현한 실레의 작품과 어우러진 체스키 크룸로프는 더욱 고혹적이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돌아보는 데 반나절에서 하루면 충분하기 때문에 프라하에서 당일 여행으로 오는 이들도 많다. 보트를 타고 블타바 강을 따라 마을을 도는 래프팅도 강추다. 노를 저으며 말발굽처럼 휘어진 강을 돌며 체스키 크룸로프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나무 뗏목을 타는 것 역시 인기가 높다. 2명의 키잡이가 강을 따라 마을의 구석구석을 안내해준다. 래프팅과 달리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니 체력 소모가 거의 없다. 여유로운 관광의 완성형이라 할 만하다. 나무 뗏목 크루즈의 출발지는 호텔 가르니 미시 디라(Garni Mysi Dira) 아래에 있으며 호텔에서 카누와 보트를 대여할 수 있다.
이것만은 꼭!
체코에 간다면 전통요리 콜레뇨(Koleno)를 꼭 맛봐야 한다. 흔히 족발에 비교되는 콜레뇨는 돼지 무릎 부위를 흑맥주와 허브 등에 재워 구운 음식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아주 부드러워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다른 음식에 비해 양이 많아서 성인 남성 2명이 함께 먹어도 충분하다. 기름지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맥주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
체스키 크룸로프의 콜레뇨 맛집은 중심광장에서 인포메이션 센터 옆 골목으로 가면 찾을 수 있다. 이름이 길어서 통칭 크라치마(Krcma v satlavske Ulici)로 불리는 식당인데, 허름해 보이지만 내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질 좋은 고기를 직화구이로 내놓는 곳으로 유명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입구 앞에 화덕에서 음식을 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운 것은 보너스. 콜레뇨 1인분 295코루나(약 1만5000원). Horni, 157, Cesky Krumlov 381 01, Czech Republic
프라하=글·사진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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