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주목하는 미국 금리인상 여부
신흥국 또다른 금융위기 촉발 우려
중국·일본과 통화협력 등 문단속 했어야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이 글이 실릴 때쯤이면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했을 것이다. 금리를 올리면 올리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세계적 충격이 있을 것이다. 지금 필자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 충격이 어떤지가 아니라 이런 질문이다. 왜 세계는 미국의 금리 결정에 그렇게 충격을 받게 됐는가.
그 주원인은 2008년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가 터지자 Fed는 당장 금리를 제로(0)로 내리고 양적 완화를 통해 계속 돈을 풀었다. 그 결과 미국은 위기의 발원지면서도 위기 후의 ‘대침체’로부터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 회복하니 금리를 올리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 대한 영향이다. 그중에서도 개발도상국이 문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나자 단기자금이 빠져나가 위기에 몰렸던 개도국들은 그 후 미국 돈이 몰려들어 자산가격 거품과 환율 하락을 경험했다. 그러다 이제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니 돈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금융시장이 불안하다. 그들 중에는 단기외채를 못 갚아서 외환위기를 겪는 나라도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개도국의 수많은 민초의 삶이 수만리 떨어진 미국의 투기꾼들이 일으킨 금융위기와 그것을 수습하는 몇몇 전문가들 손에서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대공황 이후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투기꾼의 변덕에 민초의 삶을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득세해 국제적으로 단기자본 이동을 통제하고 국내 경제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것이 브레턴우즈 체제의 정신이었다. 그것은 당시 국제통화 창출을 주장했던 영국 대표 케인스와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자고 했던 미국 대표 화이트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30년 정도 유지됐다. 그 기간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라 불리는 고도성장과 안정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체제는 지속되지 못했다. 단기자본 통제에 구멍이 생겼고, 미국이 경제정책을 무책임하게 운영,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금 태환이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응했나. 일종의 ‘구조적 권력’을 구축해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시키고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려 했다. 그 결과 단기자본시장 개방이 미국의 정책이 됐다. 개도국에 개방 압력을 가하고 1997년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목적으로 사실상 외환위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자본시장을 열고 나면 개도국은 그 때문에 외환보유액을 훨씬 더 많이 쌓아야 하는데, 그 대부분을 미국 달러로 쌓지 않으면 미국이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구도에서 2008년 많은 개도국이 미국발 위기에 끌려들어갔다. 미국은 자국의 금융체제를 잘못 운용하면서 그 충격이 전 세계에 미치는 시스템을 강요했다. 그리고 지금 자국 경제가 나아지니 금리를 올리는 과정에서 다시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1997년 위기와 2008년 위기가 이 같은 구도에서 일어났다. 지금 한국의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은 무엇보다 경상수지 흑자를 내서 외환보유액을 더 쌓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한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하고 보복 위협을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한국이 외국환평형기금채권과 통화안정증권 이자를 물고,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희생하면서까지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것이 좋아서 하는 일인가.
물론 미국의 행태가 무책임하고 불공정해도 한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 체제 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의 실천방안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1997년 위기 때의 한·미·일 관계를 상기해 보면 지난 2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을 끝낸 것이 잘한 일인가. 중국과의 협조도 통화협력 같은 것이 더 절실해 보인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적 풍토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큰형님 하는 일에 토를 다는 것은 무조건 ‘불경죄’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부터 고쳐야 할 것이다.
이제민 <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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