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저금리와 저성장은 성장주의 고평가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다면 위험한 게임은 끝날 겁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이채원 부사장(사진)은 질문이 몇 개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 채로 사무실 여기저기로 걸으며 말을 이어갔다. 격앙된 상태였다.
"2011년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 거품 때 OCI가 65만원, 삼성엔지니어링이 28만원, LG화학이 58만원까지 갔습니다. 지금은 10분의 1 토막까지 났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대형주라 유통물량이 많아 급락기에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바이오 화장품 등 중소형 성장주가 득세하고 있습니다. 이번 충격은 과거 차화정 때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수백번, 수천번이라도 경고하고 싶다는 게 그의 심정이다. 이 부사장은 비이성적인 광기에 휩싸인 장에서 빠져나오라고 투자자들에게 부탁했다.
이채원 부사장은 한국 가치투자의 대명사다. 그가 2006년 내놓은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는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고 한 번도 원금을 잃지 않았다. 지난 14일 이 부사장을 만나 그의 경고를 들었다.
◆ "위험한 게임의 끝이 보인다"
이 부사장은 "사람들이 불과 3~4년 전의 차화정 거품 때를 잊어버렸다"며 "경기가 돌아서면 성장주의 주가가 박살이 나는데, 이같은 현상이 또 나올 것같다"고 우려했다. 이어 "현재 시장에 주가수익비율(PER) 30~40배짜리 주식이 넘쳐나고 있다"며 "그런데도 최근까지 고평가 주식이 더 오른 것은 세계적인 저금리 현상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금리로 한국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6%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이익률(금리)의 역수(1/1.6)가 PER이다. 1.6%는 PER로 60배에 달하기 때문에, 종목들의 30~40배 PER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PER은 주당순이익을 주가로 나눈 것이다. PER이 60배라는 것은 현재 주가가 주당순이익보다 60배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는 말이다. 투자자는 60을 투자해 1의 이익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이익률은 1.67%가 된다.
그러나 미국을 시작으로 금리가 높아지게 되면, 주식의 고PER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 시중 금리가 2~3%까지 간다면, PER은 33~50배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중 금리의 상승은 주식의 할인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저성장 기조에 따른 성장에 대한 목마름도 성장주의 고평가를 이끌었다"며 "어떤 기업이 조금만 성장해도 투자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시중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위험한 게임의 끝이 보이고 있다"며 "일단 비싼 주식은 다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美 금리인상에 휘둘리면 안 된다"
그는 미국이 연내 한 번 정도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는 인상 여부에 휘둘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부사장은 "미국이 시중의 유동성을 회수하는 금리인상을 실시한다면, 주가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금리인상은 이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고,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금리인상은 수급 측면에서 주식 시장에 단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호재라고 생각되면 이때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급에서의 충격은 이미 발생하고 있다. 외국인은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5일부터 9월15일까지 29거래일 연속 순매도했다. 5조5000억원에 달하는 규모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33거래일에 이어 최장 기록이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고점 부근에 있는 상태에서 미국이 금리인상을 발표하면 당연히 급락한다"며 "그러나 코스피가 1800선이라면 빠지겠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금리인상 이후 코스피지수는 하락할 수도, 상승할 수도 있다. 그러니 금리인상 여부에 따른 영향을 예단하지 말고, 현상에 대응하는 전략을 취하라는 조언이다. 무엇보다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에 어떤 일 벌어지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라고 했다.
금리인상이 내 종목에 영향이 없는데 주가가 하락한다면, 절호의 매수 기회라는 것이다.
이 부사장은 "두려운 것은 큰 거품이 꺼질 때는 성장 翎?가치주가 모두 빠진다는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운용 펀드에서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가 펀드에서 현금비중을 확대한 것은, 한 단계 더 거품이 빠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 "대안은 퀄리티 밸류 스탁"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는 지난 7월 삼성전자를 담았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보유주식을 모두 판 이후 8개월여 만이다.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주가 매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지금같은 불확실한 환경에서는 이익의 지속성이나 안정성이 높은 기업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단순히 싸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삼성전자의 세계 1등 기업으로서의 지위 등과 지속 가능성을 봤다는 것이다. 시중금리 상승과 경기 회복으로 가치주의 시대가 돌아오겠지만, 당장은 아니기 때문에 정성 분석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PER이 10~12배 사이에 있으면서도 사업 구조가 안정적이고, 세계 시장에서 이길 수 있는 기업들은 보고 있다"며 "이익의 질이 좋고 싼 '퀄리티 밸류 스탁(quality value stock)'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밸류 10년투자 증권투자신탁1호' 안에 삼성전자 포스코 LG 삼성생명 등 대형주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이 부사장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파장을 생각한다면 이제부터는 위험관리에 나서야 할 때"라며 "다치지 않고 손실을 보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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