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 130년 발자취를 찾아서…下 감리교 뿌리 내린 아펜젤러
서울 정동제일교회 설립
17년 선교로 전한 영성 130년째 활짝 꽃피워
[ 고재연 기자 ] 지난 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 있는 랭커스터제일감리교회. 1802년 설립된 이 교회는 호러스 언드우드와 함께 한국 최초의 선교사이자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G 아펜젤러(1858~1902)가 감리교인이 된 뒤 다녔던 교회다. 고즈넉한 교회 안쪽으로 들어서자 아펜젤러의 가족사진과 성경 등 그를 기리는 자료들이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아펜젤러 추모 예배당이 따로 마련돼 있다. 정동제일교회가 기증한 십자가도 있다.
“8년 전 교회당을 증축하면서 역대 교인 중 가장 영향력이 크고, 해외 선교에 공헌한 이가 누구인가 검토한 결과 아펜젤러가 꼽혔습니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기 위해 추모 예배당을 건립했죠. 부임한 지 두 달째인데 벌써 세 번째 한국인 단체방문객이 다녀갔어요.”
이 교회 조 디파올로 담임목사의 말이다. 최근에는 아펜젤러가 개척한 인천내리감리교회 교인 130명이 다녀갔다. 17년 동안 한국에서 선교했던 아펜젤러의 영성이 13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뭘까.
1858년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시골마을 수더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아펜젤러가 본격적으로 해외 선교를 꿈꾸게 된 건 1882년 뉴저지주 매디슨에 있는 드루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다. 서로 다른 신학교에 다니던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이듬해 코네티컷주 하트포드에서 열린 총회에서 처음 만났다. 여기서 두 사람은 마지막 ‘은둔의 나라’ 한국의 선교 문이 열렸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두 사람이 조선 최초의 선교사가 된 운명의 순간이었다.
인도에 가려던 언더우드와 마찬가지로 아펜젤러 역시 처음엔 일본 선교를 꿈꿨다. 하지만 그의 친구 워즈워스가 조선에 가지 못하게 되자 1885년 부인 엘라 도지와 함께 27세에 조선땅을 밟았다. 그는 1887년 신학문에 뜻을 둔 청년을 모아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서양식 학교인 배재학당(현 배재고)이었다. 1895년에는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해 평생 담임목사로 재직했고, 인천내리감리교회도 개척했다.
드루신학교 고문서실에는 1882년 아펜젤러가 입학 당시 쓴 자기소개서와 한국에서 선교하면서 쓴 편지 원본을 비롯해 그의 행적을 보여주는 문서들이 보관돼 있다. 크리스토퍼 앤더슨 고문서실장은 “아펜젤러의 글을 통해 한국 문화와 역사가 미국에 알려졌고, 그의 한국 선교 이후 이 학교에서 많은 선교사가 배출돼 해외로 나갔다”며 “아펜젤러는 해외 선교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고문서실에서 나와 세미너리 홀에 들어서자 감리교 교인인 이희호 여사(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가 2000년 이곳을 방문해 남긴 ‘사랑과 평화’라는 휘호가 눈에 띄었다. 아펜젤러가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사랑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듯했다. 1902년 6월11일 밤, 아펜젤러는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물에 빠진 조선 소녀를 구하려 뛰어들었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랭커스터·매디슨=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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