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십장남사고(九遷十葬南師古)’라는 말이 있다. 부모의 묘를 아홉 번 이장한 풍수 기인(奇人) 남사고를 빗댄 말이다. 말라 비틀어진 뱀이 나무에 걸린 고사괘수(枯死掛樹) 산세를 비룡상천(飛龍上天)이라 오인한 열 번째 이장지를 끝으로, 신인(神人)이라 불리던 사내의 인생도 막을 내린다. ‘중도 제 머리는 못 깎고, 의사도 제 병은 못 고친다’는 위로 탓일까. 격암(格菴)의 신통방통한 일화는 예언서 ‘격암유록(格菴遺錄)’과 함께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져 있다.
선조 33년(1600년) 음력 6월 선조의 정비 의인왕후 박씨가 승하했다. 당시 조선의 풍수학계는 명나라의 학설을 따른 의명파(依明派)와 실리 위주 자강파(自强派)의 대립이 극에 달했다. 의인왕후 장지 결정 과정에서도 대립은 반복됐다. 선조가 부른 중국의 ‘풍수 용병’ 섭정국과 광주(光州) 출신 이의신이 의인왕후의 장지를 놓고 한 판 대결을 벌였다.
선조는 황상(皇上)의 수릉(壽陵) 자리를 잡은 섭정국의 경력을 들어 그의 의견에 적극 동조했다. 이에 좌의정 이헌국은 격국(格局)이 서로 다른 까닭으로 섭정국이 뽑은 터는 결코 쓸 수 없다고 항명했다. 선조는 작전을 바꿔 이의신이 수파(水破)를 따지는지 재하문했다. 이번엔 영 프?이항복이 ‘형세가 좋으면 수파를 보지 않고 내맥(來脈)을 본다’고 답했다.
여기서 문제가 된 ‘수파(水破)’란 ‘수파장생(水破長生)’의 줄임말이다. 즉 물이 좋은 방향으로 빠져나가 왕릉의 오랜 생함을 깬다는 이치다. 이 원리는 조선의 국도를 계룡산 신도안이 아니라 한양으로 삼게 했던 중국인 호순신의 ‘지리신법(地理新法)’이 그 원류다. 즉 중국 풍토에 맞는 중국 풍수지리다.
풍수지리 베스트셀러 금낭경(錦囊經)에는 ‘득수위상 장풍차지(得水爲上 藏風次之)’라는 문구가 있다. 물을 얻는 것이 먼저고 산을 얻는 것은 그 다음이란 소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물(水)판이고 대한민국은 산(山)판이다. 따라서 우리의 풍토엔 ‘산을 먼저 얻고 그 뒤에 물을 얻는다’가 맞다. ‘장풍위상 득수차지’가 정답이다. 영의정 이항복이 말한 이의신의 내맥을 보는 것이 중하지 수파는 다음이라는 이치와 상통한다.
철학이나 종교 등의 학문이 다른 나라에 전파돼 현지화되지 않으면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부작용은 자연스러움을 파괴하고 위험을 초래한다. 중국 기업과의 교류가 많아진 요즘 중국 풍수 전문가의 한국 방한은 환영할 일이다. 400년 전 같은 우(遇)를 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중 국제 풍수지리 학문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 각 나라의 풍토에 맞는 풍수가 논의됐으면 한다.
강해연 < KNL 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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