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잃은 내가 만난 운명의 Book (34) 복거일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중국은 덩샤오핑의 과감한 개방정책과 시장경제 도입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정치·경제·군사 면에서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가히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다. 곧 미국을 추월하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제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은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까지 섣부르게 예측했다.
차이메리카 시대?
이제 세계는 G2(미국과 중국)가 이끈다.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교수는 저서 ‘금융의 지배’에서 이것을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라 불렀다. 중국이 저가 상품을 수출해서 얻는 경상수지 흑자로 미국의 국채를 사면서 미국은 적자재정을 메우는 동시에 중국 상품을 수입·소비하는 공생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호 의존관계는 경제 버블의 한 원인이었지만 아직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저명한 경제학자인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려면 적어도 1세기가 더 걸릴 것이며, 오히려 유럽이 21세기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서로 교수의 표현대로 중국이 진정한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중국 학자가 잘 표현했듯이 내륙지역 중국인의 생활은 아직 제3세계 수준이다. 정치·사회의 민주화 정도도 미약하다.
한반도 수천년 역사에서 지난 20여년이 중국에 큰소리친 처음이자 마지막 시대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해양세력보다 대륙세력인 중국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한국은 패권국으로 다시 떠오르는 중국 앞에서 다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국 문제 전문가는 한국인에게는 장구한 세월 중국의 조공 국가로 살아온 DNA가 있어 중국의 횡포에 대해선 일본의 횡포와는 달리 어느 정도 감내하려는 성향이 있다고까지 얘기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설가이자 시인, 사회평론가로 경계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작가 복거일의 저서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복거일은 경제 영역을 위시한 정치·외교·군사 등의 영역에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다루고 있다. 특히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섬에 따라 생길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 심화와 그에 따른 중국의 정치를 포함한 전반적인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을 우려한다.
복거일은 “빠르게 늘어나는 중국의 영향력에 한국의 주권이 점점 자주 그리고 깊이 침해되는 현상”을 경계하면서 “중국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문제는 경제적 영향을 훌쩍 넘는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 이에 바탕을 두고 최근 빠르게 부상 중인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진단하고,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 바를 제시한다. 그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이미 “비대칭적”이기에 중국의 위협은 “앞으로 중국의 힘이 커지면서 점점 심각해질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 책의 열두 장에 걸쳐 중국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과 그 대책을 진지하게 분석한다. 중국의 제국주의는 미국의 제국주의보다 훨씬 일방적이고 공격적일 가능성이 크고, 한·중 양국 사이의 힘이 비대칭이면, 양국 사이 관계 역시 비대칭적이 된다. 이미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강대한 이웃은 불길
이 책은 먼저 중국이 최근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게 된 원인으로 경제개혁을 든다. 경제 분야를 자유화함으로써 폭발적인 경제성장이 이뤄졌고, 또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어느새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폭발적인 경제성장과 군사력 증강을 기반으로 자연스레 중국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다.
저자는 역사적 경험을 근거로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미래상을 그린다. 중국이 자유주의 체제가 아니라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 국가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동안 세계질서를 주도해왔던 ‘미국 제국’과의 비교를 통해 이런 중국의 용솟음이 결코 한국에 유리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린다. 중국 제국주의의 위험성은 공산당 일당체제의 독재적 특성과 필연적으로 연결되고, 여기에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민족주의라는 배타적 이데올로기가 결합돼 나타날 공격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강대해진 이웃은 늘 불길한 징조”이며 “강대한 나라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는 강대한 나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예로 오랫동안 러시아(또는 소련)에 굴욕적인 자세를 취한 핀란드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강대국 옆에 위치한 작은 나라가 처할 수 있는 위험을 설파한다. 즉, 저자는 큰 나라에 대응하는 작은 나라의 ‘적응적 묵종(adaptive acquiescence)’의 대표적 예인 ‘핀란드화(Finlandization)’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핀란드는 영토의 일부를 러시아에 할양하고 러시아에 묵종함으로써 국가의 생존을 유지했다.
저자는 “한국은 현실을 정직하게 살피고 우리에게 괴로운 상황을 인정하는 도덕적 용기를 발휘해야” 하며 “우리는 이미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으며, 되짚어 나올 길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적응적 묵종이 선택하는 전략은 ‘양보(concessions)’와 ‘대항력(counterweight)’이다. 따라서 우리의 합리적 대응은 강대국의 더 큰 압박을 막아내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항력을 함양시켜 양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대항력의 요소는 ‘외교적 대항력’ ‘군사적 대항력’ ‘시민적 대항력’ 등이며, 특히 외교적인 면에선 다소 소원해진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나라 일본과의 협력을 공고히 할 것을 요구한다. 즉, 저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동맹국 및 우호국가와의 동맹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다.
공산당 일당체제 한계도
저자는 이런 냉엄한 현실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진지한 자기성찰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통탄하며, 오히려 한국사회가 현실을 외면하고 위선에 매달리는 ‘도덕적 타락’으로 빠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중국은 의심할 바 없는 강대국이며 한국과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는 국가로서 영속할 것이다. 언젠가는 1등 국가가 될 잠재력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조만간 세계 공동체나 아시아 공동체의 진정한 리더가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런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중국은 당분간 세계의 리더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리더가 되기에도 힘겨워 보인다. 하부구조인 경제체제는 한국보다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체제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체제이며, 국가 이데올로기도 (비록 대단히 변형된 형태이긴 해도) 아직 공산주의인 기형적 이중구조가 존재한다. 발전하는 시장경제와 나날이 자유로워지는 사회체제에서 인간의 욕망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개명되긴 했지만 경직된 상부구조가 과연 이런 욕구를 효율적으로 충족하거나 통제할 수 있을지가 매우 불투명하다. 이 문제 ?해결되지 않고는 지속적인 경제발전 역시 불가능하다.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한국과 중국은 밀접한 협력과 상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신(新)조공체제로 가자는 얘기는 옳지 않다. 중국의 무서운 성장과 커다란 영향력 앞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해 나가기 위해선 현 국제정세의 위기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복거일의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는 독자들에게 냉엄한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대처 자세를 일깨워주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이다.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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