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들의 '베스트&버킷 리스트' 6곳
[ 최병일 기자 ] 전문 여행작가들은 어떤 곳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을까요? 이름조차 생소하고 화려한 경치가 끝없이 펼쳐진 엘도라도 같은 곳일까요? 아니면 누구나 한 번쯤 가봤지만 고수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한 의외의 장소일까요? 이들이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 곳은 소박합니다. 어찌 보면 평범하기까지 합니다. 필리핀 최북단 바타네스나 독일 하이델베르크, 아마존, 인도 북부의 조드푸르 같은 곳입니다.
여행작가들이 각자 버킷리스트에 올려놓은 여행지 또한 거창한 곳이 아닙니다. 익히 알려진 아마존 밀림이나 바다보다 더 큰 호수로 유명한 티티카카였습니다. 그들이 이런 곳을 좋아하는 것은 몇 번을 다녀와도 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풍경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여러 번 다니다 보면 퇴색하기 마련이지만 소박하면서도 정갈하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여행지는 여간해서 잊을 수 없나 봅니다.
여행의 목적지는 결국 사람입니다. 여행 전문가들은 “사람 향기 가득한 곳이 최고의 여행지”라고 입을 모읍니다. 지구촌 곳곳을 여행한 이들이 말하는 최고의 여행지와 꼭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여행지로 가보실까요.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황홀한 아끈다랑쉬오름
1 제주 오름&억새
제주에 내려와 터를 잡고 산 지 벌써 1년. 번잡한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느낀다. 제주에 살면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오름이다. 제주의 오름이 373개라고 하는 이도 있고 374개라고 하는 이도 있다. 오름은 화산 분출로 생긴 기생화산의 흔적이다.
제주에 살면 여행자로서 봤던 것보다 더 절묘한 풍경이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정착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무엇보다 오름마다 피어난 억새가 압권이다. 흐드러지게 피어 은빛으로 반짝이는 억새는 묘하게 관능적이고 이채롭다. 제주에 억새가 피기 시작하면 따라비오름, 새별오름, 용눈이오름 등 유명 오름을 찾아 정신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사람들에게 각각의 표정이 있듯이 오름도 저마다의 얼굴이 다르고 색감도 다르다.
그중에서도 억새가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아끈다랑쉬오름’을 들겠다. 해가 질 무렵 아끈다랑쉬오름에 오르면 빛이 가장 곱다. 은색으로 바람에 흔들거리던 억새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억새에 불을 놓은 듯 일부는 희게 또 일부는 붉게 흔들거리는 모습은 어떤 그림으로도, 어떤 사진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조인채 여행사진가 Cici7301@naver.com
세상의 끝자락에 있는 섬…오지의 순박함에 반했네
2 필리핀 바타네스
바타네스는 필리핀 최북단, 루손 섬과 대만 사이에 있는 10개 섬으로 이뤄진 제도(諸島)다. 필리핀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부를 정도로 바타네스는 필리핀에서도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사실 이 섬은 필리핀에 속해 있지만 지리적으로는 필리핀보다 대만에 더 가깝다. 맑은 날이면 바타네스에서 대만이 보일 정도다. 서쪽으로 남중국해를, 동쪽으로 태평양을, 북쪽으로 바시해협과 마주하고 있다.
바타네스의 또 다른 별명은 ‘태풍의 섬’이다. 필리핀 태풍관측 기준으로 슈퍼 태풍에 해당하는 초강력 태풍이 1년에 열 번 이상 통과한다. 얼마나 강력한 태풍이 부는지 미군이 ‘레이더 투콘’이라 불리는 레이더 기지 내에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를 세우려 했지만 태풍에 못 이겨 통째로 날아가 버렸고 지금은 건물 잔해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태풍이 많다 보니 건축양식도 독특하다. 바닥을 깊게 파고 벽을 쌓아 태풍에 견디기에 알맞은 구조로 세웠다. 석회암으로 지은 돌집 벽의 두께가 1m에 달한다. 집 지하실에는 태풍이 불 때에 대비해 가축과 식량을 저장하고 사람이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를 만들었다. 문과 창문이 모두 태풍이 오는 방향을 등지고 난 것도 이채롭다. 필리핀의 산간지역 오지인 사가다와 바나웨 지역을 여행한 이후 바다 쪽 오지인 바타네스를 찾고 싶었다. 도시화되지 않고 고유한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내 마음 속에서 오랫동안 떠나지 않는 의미가 됐다.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동화 속 古城 길, 너와 함께 걷고 싶다
3 독일 하이델베르크
하이델베르크를 여행하는 내내 마치 책 속으로 들어간 듯한 기분이었다. 긴 골목을 따라 좌우로 페이지를 펼치듯 명소가 이어지고, 장소마다 흥미로운 일화가 담겨 있었다. 하이델베르크는 유럽 도시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은 곳으로 기억한다.
하이델베르크역에서 트램을 타고 옛 시가지 입구에 도착하면 독일 최초의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를 만난다. 관광객의 흥미를 끄는 것은 대학이 치외법권이던 시절에 죄 지은 학생들을 수용했던 감옥이다. 감방 벽면에 수감자들이 남긴 낙서도 볼거리다. 비장한 각오를 다진 문장, 재치 넘치는 농담, 솜씨 좋은 그림이 어울려 멋진 벽화를 보는 것 같다. 감옥을 나와 광장을 지나면 유명한 철학자 칸트가 거닐던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나온다. 매일 오후 3시 정각에 다리를 건너던 그를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의 시간을 맞췄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다리 위 언덕의 하이델베르크 성은 여행의 절정을 이룬다. 전쟁과 재해로 파괴된 성벽을 그대로 드러낸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곳이다. 지하 저장고에는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으로 등재된 술통도 있는데, 술통 관리인에게 얽힌 일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소문난 애주가였던 그는 하루에 18L의 포도주를 마시며 80세까지 살았는데, 의사에게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이 곳을 여행하면 수첩에 새 친구들의 연락처가 빼곡할 것"
4 인도 라자스탄주 조드푸르
넓고 넓은 인도의 여행지 중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난감한 사람이 딱 한 곳만 여행지를 집어 달라고 하면 주저없이 서북부 라자스탄주의 조드푸르로 가라고 말한다.
여행가이드 북 론리플래닛은 라자스탄주에 대해 “이 지역을 여행하고 나올 때면 당신의 수첩에 새로 사귄 친구들의 연락처가 빼곡할 것”이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라자스탄주에서도 조드푸르는 유독 더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다. 라자스탄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조드푸르는 ‘블루 시티(blue city)’란 아름다운 애칭을 갖고 있다. 온 마을 건물이 파란색인 조드푸르의 구시가지 지역은 임수정, 공유 주연의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여 수많은 관객을 매혹시켰다.
조드푸르 사람들이 건물을 파랗게 칠한 것은 힌두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 ‘시바’에 경외를 표현한 것. 옛날에는 신을 모시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들만 집에 파란색을 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왕이 사는 성 주위로 파란색 집으로 가득한 마을이 생긴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도 3대 성 중 하나인 메랑가르 성에 올라 내려다보는 마을의 전경은 마치 파란색 물결이 넘실대는 듯하다.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꼭 블루 시티 구석구석을 산책하도록 하자. 파란 집의 색만큼이나 깨끗한 마음을 가진 주민들이 최고의 환대를 해줄 것이다.
김경우 여행작가 ichufs@naver.com
땅 위의 바다, 시리도록 푸르다
5 페루 티티카카 호수
오래 전 어느 잡지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지구 반대편 남미로 날아갔다. 그 사진은 ‘육지의 바다’라 불리는 티티카카 호수였다.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고 규모도 가장 크다는 호수. 티티카카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지대에 있다. ‘설마 이곳이 호수겠어?’라고 생각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손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고서야 믿을 수 있었다. 티티카카 호수는 하늘이 맑은 날이면 눈이 시리도록 푸른 빛을 발한다. 거대한 호수에는 섬이 여러 개 있다. 그중에서도 외딴 곳에 있는 아만타니 섬에 도착하니 선착장에 마을 사람들이 마중 나와 있다. 아만타니 섬은 전기 없는 마을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자가 발전기를 갖춘 집들이 있어 최소한의 전력을 이용해 제한적으로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궁금했는지 귀여운 소녀가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부엌으로 들어가 몸을 숨긴다.
아만타니 섬의 오후는 너무나 고요하다. 잔잔한 호수 위의 낮은 구름은 금방이라도 호수를 덮어버릴 듯이 낮게 비행하고 있다. 아만타니 섬 정상에는 잉카인들에겐 신성한 장소로 불려지는 신전이 있다. 섬 정상에 올라서니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구름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호수의 색이 환상적이다. 눈 막?본 이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간직하고자 가슴 속에 깊이깊이 담아뒀다.
신미식 여행작가 sapawind@naver.com
배로 몇 달의 여행…진짜 아마존은 생명이 꿈틀댄다
6 브라질 아마존
10년 전, 10개월의 남미 배낭여행 중 베네수엘라에서 독일인 보로 씨를 만난 일이 있다.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는 무뚝뚝한 아저씨는 젊은 시절 아마존 깊숙한 밀림을 여행했다고 한다. 보로 씨는 드물게 아마존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쳐 독일 현지 신문 지면을 여러 번 장식했다고 했다. 그는 “아마존이 위험한 건 깊은 밀림 때문만은 아니다. 비가 올 때마다 강의 지류가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길을 찾기 어려워 고립되기 때문이지. 난 죽기를 각오하고 내 이름을 새긴 목걸이를 하고 밀림으로 뛰어들었어”라고 말했다.
사실 그때는 보로 씨의 비장한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하지만 보로 씨를 만난 지 10년이 넘어가는 지금 내게 아마존은 알면 알수록 호기심을 당기는 놀라운 땅이 돼가고 있다. 원시적인 생물체와 풍경, 다른 문명이 닿지 않아 순수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보는 것이 평생 소원 중 하나가 됐다.
우리 힘으로 닿을 수 있는 아마존은 그저 관광지에 불과하다. 진짜 아마존을 만나려면 배를 타고 몇 주 혹은 몇 달을 여행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을 감수하고라도 원초적인 생명의 환희가 꿈틀거리는 아마존 정글 속으로 가고 싶다.
박명화 여행작가 potatop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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