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지난 7월24일 한 의뢰인이 “성공보수 명목으로 건넨 1억원을 돌려달라”며 변호사 조모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로 본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형사사건 재판에서 승소할 경우 변호인에게 일정한 돈을 사후에 주기로 약속하는 것이 선량한 풍속에 위배된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전관예우로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일이 없어지게 됐다고 환영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그간 수임료의 상당 부분을 성공보수로 받아왔던 변호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를 둘러싼 찬반양론을 알아본다.
○ 찬성 “전관예우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법원은 “성공보수금은 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변호사 직무의 공공성, 독립성을 해치고, 사법 제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며 “형사 사건에서는 선량한 풍속에 위반되는 것으로 보고 앞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형사사건에 관련된 성공보수 약정에서 ‘성공’은 구속 여부 등 형사절차의 본질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만약 형사사건에서 특정한 결과를 ‘성공’으로 정해 대가로 금전을 주고받기로 한 합의가 일반적인 도덕관념에 어긋난다면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민사 등 다른 사건에서는 변호사와 의뢰인이 합의해 보수를 정할 수 있지만, 이와 달리 형사사건은 변호사 직무의 윤리성과 독립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성공보수 약정을 인정할 경우 부작용이 크다고 본 것이다.
전관예우를 없애는 계기가 된다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성공보수가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계속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던 것을 생각할 때 사법개혁의 희망을 품게 하는 개혁적인 판결이라는 것이다. 재판에 영향력 있는 고위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사건을 맡아 무죄, 감형, 집행유예 등을 이끌어내고 그 대가로 고액의 성공보수를 받는 것이 오랜 법조계의 잘못된 전통이었다는 지적이다.
이철희 변호사는 한 방송에 출연, “돈을 써서 검사 출신 변호사를 쓰면 불구속, 돈을 안 써서 일반 변호사를 쓰면 구속이라는 식은 명백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며 형사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은 잘한 것이라고 밝혔다.
○ 반대 “착수금이 오르는 등 부작용 커진다”
대한 변협은 지난달 대법원이 이 같은 판결을 내자 성명을 내고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변협은 “모든 성공보수 약정을 획일적으로 무효로 선언한 대법원 판결은 계약체결의 자유 및 평등권을 위반한 것”이라며 “위헌적인 판결을 바로잡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변협은 또 “성공보수를 모 ?무효로 하면 착수금을 낼 능력이 없어 판결 선고 후 성공보수를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국민은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어 “성공보수의 폐단은 고위 법관·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전체 변호사에게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이번 판결로 전관 변호사의 착수금이 대폭 올라갈 역효과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1236명 회원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변호사들은 이번 판결이 전관예우 근절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전관예우 타파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5%였다. ‘도움이 된다’(21.6%)를 합해도 26% 정도다. 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56.2%로 절반이 넘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22.2%나 됐다.
임준섭 변호사는 한 신문 기고를 통해 “변호인의 역할을 공공성에서 찾는다면 모든 변호인을 국선변호인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성만 강조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변호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변호인이 과도한 성공보수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하면 착수금이 높아지거나 이면 계약 등의 부작용 가능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 생각하기 “사법제도와 관행 바뀌는 계기 돼야”
형사사건의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하자는 논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9년 대통령 자문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를 결의한 것을 시작으로 17대, 18대 국회에선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금지하는 변호사법 개정안도 제출됐지만 모두 폐기됐다.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정도에서만 관행으로 남아 있었으나 일본은 형사사건에서 대부분 국선변호사를 운용하고 있어 우리와는 사정이 약간 다르다.
이렇게 수차례 시도되었던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가 그간 수포로 돌아간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전관예우에 대한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실 변호인이 무조건 의뢰인의 편에 서야 하는지, 사회윤리와 공공성을 앞세워야 하는지도 결코 쉬운 이야기가 아니다. 잔혹한 연쇄 살인 피의자라고 하더라도 변호인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공성만을 요구하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고위 판·검사를 지내다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 특유의 관행이다. 단순한 형사사건 성공보수 금지 여부를 떠나 전반적인 사법제도 및 관행이 바뀌는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 변호사나 법조인들의 생각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필요가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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