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원합의체 '변호사 배제' 무효 판결
세무·회계사가 독점했던 개인사업자 세금 신고서 작성
법무법인도 세무업무 가능해져
"외부세무조정 시장 규모 1조, 변호사 2만명 시대…경쟁 불가피"
[ 양병훈 기자 ] 일정 이상의 수입을 올린 법인 또는 개인이 세무조정을 위해 반드시 세무사의 도움을 받도록 한 현행 제도는 무효라는 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세무사에게 관련 업무 독점권을 주고 납세자가 비용을 부담토록 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비용 절감을 원하는 기업은 세무사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세무법인뿐만 아니라 법무법인도 세무조정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돼 전문자격사 간 직역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대구의 A법무법인이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상대로 낸 세무조정반 지정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20일 대법관 만장일치로 확정했다.
A법인은 2000년께부터 세무조정반으로 지정받아 관련 업무를 했으나 2011년 돌연 대구청에서 세무조정반 지정 취소 통보를 받았다. 대구청이 기획재정부에 질의해 “법인세법·소득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법무법인은 세무조정반 지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규칙들은 세무조정계산서 작성을 세무사에게 의뢰하도록 강제하는 ‘외부세무조정 세무사강제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A법인은 “대구청의 세무조정반 지정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 사건 1심과 2심은 A법인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외부세무조정 세무사 강제주의대로 한다면 납세자는 상당한 수임료 부담을 안게 되므로 국민의 재산권 제한 정도가 크다”며 “기본권 제한은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하지만 이 사건 시행규칙의 모법인 법인세법·소득세법에는 이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류 작성 주체는 납세의무자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재정 구조가 단순한 중소기업과 고소득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자체적으로 세무조정을 하는 사례도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변호사 2만명 시대를 맞아 업무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법무법인도 세무조정반으로 지정받는 게 가능해져 관련 업무에 뛰어드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도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직역은 세무사 이외에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이 있으므로 전문 직역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대립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2013년 기준으로 외부세무조정이 강제되는 대상자는 개인이 약 100만명, 법인은 48만개에 달한다. 외부세무조정 시장 규모가 1조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특정 직역의 업무 독점권을 허물어 세무시장 소비자의 권익을 높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윤종훈 법무법인 바른 상임고문은 “기업 등 납세자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세무사에게 일을 맡기도록 강제하는 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로 합리적인 판단이 나왔다고 본다”며 “과세당국은 이 판결의 취지에 맞춰 유연하게 실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세무조정
기업 회계상의 당기순이익을 국세청이 세금을 부과하는 기초지표가 되는 과세소득으로 산정하는 작업. 기업 회계에선 재무상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지만 세법에선 비용으로 인정되는 항목을 더하거나 빼서 산출한다.
■ 세무조정반
기업을 대리해 세무조정계산서를 작성할 수 있는 세무사. 지방국세청장이 2인 이상의 세무사 또는 세무·회계법인을 지정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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